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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식 논설실장 |
슈퍼연휴 이후 뱃살이 늘었다는 호소를 많이 듣는다. 송편만 해도 1개가 60㎉쯤 되니 한꺼번에 10개를 먹었다면 600㎉다. 라면 1개 500㎉, 밥 한 공기 300㎉와 비교하면 겁난다. 개인 편차는 있겠지만 밥 한 공기 120g당 쌀의 원가는 넉넉잡고 300원이면 된다. 회령 오동 청동기 주거지에서도 발견된 콩, 팥, 기장과 양평 흔암리에서 발견된 조, 수수, 보리 같은 10곡(穀), 12곡을 섞어 먹는 경우는 더 든다. 라면 한 봉지 값이 650원에서 750원 사이다.
외식을 제외하고 하루 두 끼로 쳐서 쌀값은 600원이다. 쌀값이 '껌값'이다. 껌 한 통에 800원이니 껌값도 아니다. 비싼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값이 일주일치 쌀값을 웃돈다. 쌀밥을 명절 밥상, 제사상에서나 구경했던 옛날에야 달랐다. 얼마나 귀했으면 '밥통' 같다고 했겠는가. 비슷한 표현으로 독일에는 '순대의 한스', 요크셔 푸딩이 인기인 영국에는 '푸딩의 재크'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의 일종인 '마카로니'라고 놀린다고 한다.
보편적이고 맛난 음식으로 아둔함은 놀림을 당한다. 밥 먹기에 3·1정신, 머리 쓰기에 1·4 후퇴인 '바보'도 밥보에서 ㅂ(비읍)이 떨어진 채 밥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밥맛'으로 줄여 유감이지만, 원래의 '밥맛 떨어진다'도 빼어난 비유다. 이렇게 귀하고 중한 쌀이 80㎏들이 한 가마에 13만5500원이다. 희귀하게도 20년 전보다 1200원가량 싸다. 연평균 1인당 식비 지출액은 글 쓰는 이 시점 환율로 계산하니 198만3980원이다.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쌀값이다. 연간 쌀 430만톤 생산에 의무수입물량 40만톤이 더해 쌀은 남아돈다. 교도소에서도 1957년에 쌀 30%, 잡곡 50%, 콩 20%였다가 1980년에 쌀, 보리 반반씩 넣는다. 3년 전부터 쌀 100% 지침이 나와 콩밥은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콩밥 먹는 곳이 아니다. 교도소뿐 아니라 어디서든 쌀밥(rice)과 식사(meal)는 거의 동의어다. 밥이 메시(めし, 飯)인 일본, 베트남어 알파벳 표기가 아쉽게 안 되지만 밥을 '껌'이라 하는 베트남에도 쌀 문화권답게 비슷한 성격이 있지만 우리만큼은 아니다. 이런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의 반 토막인 60㎏에 그친다. 정부는 남은 쌀 처리에 직불금을 비롯해 공공 비축미 매입과 재고 쌀 보관비 등에 올해도 3조원 이상을 쓴다. 평균 두 공기씩만 먹어 공급 과잉으로 재고 누적이 생긴 일이라기엔 어딘지 씁쓸하다.
쌀 소비를 어떻게 늘릴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리처드 세일러가 제시한 남성 소변기의 파리 그림처럼 뭔가 '부드러운 개입(=넛지)'이 있어야 할 성싶다. 벼 재배면적도 10년 새 18% 줄었다. 쌀 생산이 늘수록 농가소득이 떨어지는 '풍년의 역설'은 계속된다. 내년부터 쌀 생산조정제도로 2년간 축구장 20만개 넓이(10만㏊)의 벼 재배면적을 줄인다. 벼를 재배하지 않는 조건으로 2년간 2700억원의 예산을 들인다. 그래도 쌀 재고관리 등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어 오히려 이익이다.
쾌락은 쾌락주의적 꽃마차를 움직여주는 힘이라던가. 이건 경제학자 프랜시스 에지워스의 말일 것 같다. 밥이 생명이라, 이 생명의 꽃마차를 움직여주는 밥심에서 심신의 동력을 얻는 우리가 이제부터 진정한 바보(밥보)가 돼야 하는지 모른다. '농업은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말이 '귀신 씨나락(볍씨) 까먹는 소리'처럼 공허할 때가 가끔 있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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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