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구지가 성희롱 논란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최충식 문화칼럼]구지가 성희롱 논란

  • 승인 2018-07-18 11:15
  • 신문게재 2018-07-18 21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530996090
구지가 성희롱 논란으로 유사 이래 최고(最古)의 노동요가 시비에 휘말렸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인천의 전문계 여고 교사가 의문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구지가'의 거북=남근(男根·남자의 성기)이라는 설명 때문에 성희롱 시비에 딱 걸렸다. 김해 김씨와 같이 사는 필자로서는, 그 시조인 가락국 김수로왕의 강림 설화가 서려 무진장 아끼던 고대가요라 더 황당하다. '미투'의 어떤 비정상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부터 적시하자면, 국보 306호인 삼국유사 목판본에 인쇄된 이 노래는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다. '구워서 먹으리(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가 여성기의 은유라는 이설까지 나왔으면 정말 큰일 치를 뻔했다. '거북'이 뭔지는 수로왕, 신(神), 성적 욕망, 남성의 그것, 김해 구지봉, 주문(呪文) 등으로 견해가 구구하다. 이런 부분을 기본적으로 짚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엉터리 수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인천시교육청 등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이다. 기말고사나 수능시험에 출제될 수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 훨씬 야한 고려가요 '만전춘'에서 '위위'가 흥분 상태를 나타내는 신음이라는 학설을 (여자) 선생님을 통해 거부감 없이 배운 기억에 견줘보면 이건 무슨 에로스 축에도 못 낀다. 우스갯소리로, 예쁘다고 하면 성희롱, 기분 나빠도 성추행, 쳐다보면 시선 강간이라더니, 너무 나갔다. 말로 오해가 빚어지면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비트겐슈타인을 빙의하는 습관이 나를 편하게 한다. 그래도 남는 불편이 있다면 이 또한 한계일 것이다.

전체 맥락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구약성경에도 남녀상열지사가 나오고 유가 경전인 시경(詩經)은 과거의 청소년 연애 교과서였다. 이걸 맥락 쏙 빼고 음담이라고 하면 천만부당하다. 죄의식 없이 소비되는 성희롱의 성립 요건인지를 떠나, 거북 머리에 관한 학문적 소개가 성희롱이면 교과서는 성희롱 교재, 삼국유사는 성희롱 원본이 된다. 도식적인 성희롱 낙인은 교권 침해이기 전에 인권 침해다. 수업 배제 조치를 할 만큼 불온한 작품이면 차라리 교과서에서 들어내는 편이 온당할 일 아닌가. 학교나 학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제대로 못 가르친 것이다.



안 그래도 성체(聖體) 훼손, 태아 훼손 등 반인류와 비문명의 극혐, 여혐, 남혐이 펄펄 끓는 폭염보다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유발한 언동 등 특별한 사실관계가 있지 않았으면 학문의 범주, 수업의 영역으로 봐야 몇 번이고 옳다. 어부사시사에 '무심한 갈매기는 내 좇는가 네 좇는가'라고 풀이되는 구절이 나온다. 나의 옛 스승은 고어 기본형 '좃다'가 '그것·다'라는 식의 독특한 교수학습법으로 가르쳤다. 그분 덕에 고전의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할 수 있었다.

'성희롱' 단어조차 부재하던 그 시절, 19금·28금·33금이 섞인 판타지의 바다를 건너며 한 번도 성적 굴욕감, 혐오감은 겪지 않았다. 고대가요로 성희롱 혐의를 받는다면 현대가요의 '고래사냥'에서 고래가 권력자 상징이라거나 '미인' 중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가 성적 상상력을 유발해 금지곡에 올랐다는 전설과 크게 차이가 없다. 해석이 성적(性的)이라고 성희롱이 아니다. 아마도 서기 2세기쯤의 당대 방탄소년단(BTS)이 불렀을지 모를 '구지가'를 이제 온전히 해금시켜줄 차례다. 쾌감과 호감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열린 자세가 아쉽다.







※ <구지가(龜旨歌)> 가사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63855335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시, '김해맛집' 82곳 지정 확대...지역 외식산업 경쟁력 강화
  2. 환자 목부위 침 시술 한의사, 환자 척수손상 금고형 선고
  3. 인천 남동구 장승백이 전통시장 새단장 본격화
  4. 대전서 교통사고로 올해 54명 사망…전년대비 2배 증가 대책 추진
  5. 인문정신 속의 정치와 리더십
  1. 고등학생 70% "고교학점제 선택에 학원·컨설팅 필요"… 미이수학생 낙인 인식도
  2. 대학 라이즈 사업 초광역 개편 가능성에 지역대학 기대·우려 공존
  3. [홍석환의 3분 경영] 가을 비
  4. 대전·충남 우수 법관 13명 공통점은? '경청·존중·공정' 키워드 3개
  5. 충남도의회, 인재개발원·충남도립대 행정사무감사 "시대 변화 따른 공무원 교육·대학 운영 정상화" 촉구

헤드라인 뉴스


지난해 충청권 수험생 37명 ‘학폭 이력’에 대입 불합격

지난해 충청권 수험생 37명 ‘학폭 이력’에 대입 불합격

지난해 충청권 10개 대학이 수시 전형에서 학교폭력 이력을 평가에 반영해 37명이 불합격한 것으로 조사 됐다. 2026학년도 대입 전형이 이뤄지는 올해 전국 대학이 학폭 사항을 필수적으로 확인해 탈락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된다. 18일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국·공립, 사립대학 61곳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내 학폭 처분 이력을 2025학년도 대입 전형 평가에 반영했다. 수시모집에서는 370명 중 272명(73.5%), 정시모집에서는 27명 중 26명(96.3%)..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K-방산 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위한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에 대전시와 산학연이 뭉쳤다. 대전시와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화시스템, 대전테크노파크는 18일 시청에서 '국방·우주반도체 국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 이광형 KAIST 총장, 방승찬 ETRI 원장, 손재일 한화시스템㈜ 대표, 김우연 대전테크노파크 원장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협약 기관들은..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1월 15~16일 이틀간 충남 청양공설운동장에는 선수들을 향한 환호와 응원으로 떠들썩했고, 전국에서 모인 풋살 동호인들은 신선한 가을 하늘 아래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중도일보와 청양군체육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청양군과 청양군의회가 후원한 이번 대회엔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충청권 4개 시도를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선수들과 가족, 지인, 연인 등 2500여 명이 참여해 대회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