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눈썰미, 장승업의 호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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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눈썰미, 장승업의 호취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1-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한두 번 보고도 곧잘 흉내 내는 재주나 기교를 눈썰미라 한다. 탁월한 관찰력과 표현력,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능력이리라.

조선 말 화가 장승업(장승업(張承業, 1843? ~ 1897?)이 그런 인물이다. 특별히 배운 것은 전하지 않지만 모든 소재를 자유자재로 그려내, 안견, 김홍도, 정선과 함께 조선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전하는 작품도 600여 점에 달하지만, 교과서 및 각종 미술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고, 2002년에 선보인 영화 취화선(醉畵仙, 김용옥 각본, 임권택 감독, 최민식 주연)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알려진 이상으로 한국의 근현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명성과 달리, 기록물은 거의 없다. 과문 한 탓이겠으나 『일사유사(逸士遺事)』 외에 자료를 보지 못했다. 일사유사는 장지연(張志淵, 1864 ~ 1921, 언론인)의 유작으로 1922년 발행되었다. 필자는 1982년 태학사에서 복사 발행한 책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중인계층의 활약상을 묶은 책으로 1책 6권으로 되어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주 짧은 내용이다. 다른 정보 대부분이 이 책을 근거로 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해 보자. 원래 무반 집안이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집안이 심히 가난하여 의탁할 곳이 없자, 고향 떠나 여기저기 떠돈다. 수표교에 살던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한다. 이응헌은 고서화와 금석문에 조예가 깊었는데 장승업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배려해 준다. 늦게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지는데, 원근에서 그의 그림을 찾는다. 고종이 그 명성을 듣고 불러들여 감찰직을 제수하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워낙 주색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하여 세 번이나 도망한다. 고종이 진노하여 벌하려 하였으나 충정공 민영환이 간청하여 그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당대의 많은 세력가가 그를 후원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거기서도 탈출, 저자에서 주색을 즐기며 그림을 그린다. 속박을 싫어해 40세에 첫 장가 드나 첫날밤 지내고 도망치기도 한다.

장승업 화조도
그의 수작 중 하나인 호취도(毫鷲圖, 135.4×55.4cm, 종이에 수묵담채, 호암미술관)를 보자. 농담을 잘 살린 활달한 감필법으로 화폭 전체가 기운생동 한다. 특정 화풍이나 화법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구사한 그의 빼어난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리의 매서운 눈, 날카로운 발톱 등 맹금류 특성이 잘 살아 있으나 수목과 어울려 부드럽게 녹아있다. 위에서 이야기 건네는 수컷의 동세가 생동감을 더해, 무언가 골몰하며 장중하게 앉아있는 암컷이 조화를 이룬다. 화폭의 위쪽은 역동적이고 아래쪽은 정적이다.

두 마리 모두 수컷 수리로 패권 다툼하고 있다는 감상자도 있다.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앉은 것은 안정감과 위엄이 있고, 위에 있는 것은 좀 촐랑대며 도전하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맹금류는 암컷이 더 크다. 수리 역시 수컷보다 암컷이 10% 정도 더 크다. 암수 1쌍이 함께 생활한다. 암수 한 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근거이다.

수리는 경계심이 강하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멀리하여 둥지 가까이 인공이 가해지면 번식 장소를 옮겨버린단다. 먹이가 부족하면 먼저 태어난 새끼가 나중에 태어난 새끼를 물어 죽이고, 먹어 치우기도 한다. 놀랍게도 어미는 이 광경을 보고 방관한단다. 독수리와 같이 썩은 고기만 먹는 종류도 있지만, 주로 곤충 · 새 · 개구리 · 뱀 ·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고라니를 비롯한 제법 커다란 짐승도 잡아먹는다. 그런 까닭에 수리가 하늘을 맴돌면 아이의 바깥출입을 삼가 시키기도 했다.

장승업은 글씨를 몰라 화제를 다른 사람이 써주었다고 한다. 많이 써 준 사람 중 한 사람이 정학교(丁學敎, 1832~1914, 서화가)이다. 이 그림 화제도 정학교가 썼다. 몽인체(夢人體)라고도 불리는 변화무쌍 독특한 서체가 그림과 썩 잘 어울린다.

"땅 넓고 산 높아 의기 더해 주고, 마른 잎새 풀잎 소리 정신이 새롭구나. (地闊山高添意氣 楓枯艸動長精神)"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기(意氣)와 긴장 속에 눈썰미도 생기는 것이다. 눈썰미와 유사어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싹이 노랗다'라는 말은 일이 잘될 것 같지 않은 징조가 보인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일 등이 잘될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라고 한다. 시작을 보고 미래는 물론 결과까지 예측한다. 작은 기미(幾微)로 앞날을 아는 것은 성인의 영역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그것은 경험에 의존한다. 부지기수로 사회적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고정 관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도된 능력이 사회불안과 불화를 조성하기도 하는 것임을 유념하자.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함부로 세상을 재단하지 말자. 패닉 상태이면 정신부터 가다듬어야지, 중언부언 나오는 대로 내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옴짝달싹 못 하게 자신 주변에 스스로 올무를 쳐놓는 격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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