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바이러스로 무너진 인간의 품격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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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바이러스로 무너진 인간의 품격 회복하기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 승인 2020-03-23 08:1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갑자기 콧등이 가려워 죽겠는데, '긁으면 안 돼'라고 속으로 주문을 외고 있다. 벌써 무의식중에 한두 번은 만졌을 텐데 괜스레 호들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의 삶이 흐트러진 지 오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앗아간 평범한 일상이 새삼 그리워진다.

바이러스는 일반 환경에서는 무생물처럼 지내지만, 생명체의 세포 안에서는 대사 활동과 후손 복제를 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증식하려면 숙주 세포의 표면과 구조적으로 들어맞아서 세포 안으로 침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천 종의 바이러스가 있지만, 각각 감염시킬 수 있는 숙주는 한정돼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불안정해 숙주 세포 안에서 복제될 때 변이가 일어나기 쉽고, 이로써 다른 생물 종까지 감염시킬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바이러스는 숙주를 이용해 다른 생명체로 퍼지도록 진화했다. 식물 바이러스는 진딧물 같은 수액을 먹는 곤충에 의해, 동물 바이러스는 흡혈 곤충에 의해 옮겨진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숙주의 폐와 기관지를 공격해 기침과 재채기를 유발해 비말을 타고 퍼진다.



코로나19는 신종이라서 아직 치료제나 백신도 없다. 감염자를 신속하게 진단, 격리하여 확산을 막는 것이 현재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처럼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자 세계 각국은 숙주인 사람 사이의 접촉을 격리해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고 있다. 같은 신화를 믿는 사람끼리 사회적 관계를 맺고 큰 무리를 이뤄 생존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이제 거꾸로 사회적 관계를 끊어서 살아남으려 한다.

모이고 교감을 나눠야 인간인데, 체온을 나누는 악수까지 사라지자 인간 사회가 무너져 내렸다. 사회생활이 잦아들며 소비가 급감하여 세계 경제도 마비됐다. 팬데믹이 인류를 패닉에 빠트렸다.

바이러스와 함께 두려움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이러스의 확산은 늦춰지나, 초고속 인터넷 접속이 늘어나 두려움이 빠르게 전염된다. 바이러스는 빈부를 가리지 않지만, 공포에 빠진 사회는 가난한 자와 약자를 가장 먼저 무너트린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다. 소상공인은 손님이 없는 것이 더 무섭다. 재택근무는커녕 접촉해야 하는 일이라도 당장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인 이도 많다. 사람들이 공포로 주위와 담을 쌓을수록 이들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이제 얼마 후면 코로나 사태도 끝나고 사람들도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저마다 겪은 고통의 깊이만큼 빠져나와야 할 터널의 길이도 다를 것이다. 아예 터널로 진입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 과학이 바이러스를 잡기 전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람 사이에 온기를 나눠야 한다.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기 쉽다.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앞으로 자연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인수공통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일상처럼 출몰해도 인간의 품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평소에 사회적 안전망을 잘 구축해 놓아야 한다. 품격 있는 사회라면 재난이 닥쳤을 때 약자부터 챙겨줘야 한다. 약자가 쓰러지면 사회 시스템이 무너져 강자도 약자가 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복원해 인간의 품격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따뜻한 위로를 연결해 인간 사회를 복구하자. 괴테는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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