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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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5-04-1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1월 중순 작은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쌀 6포대(1포대 20㎏)가 택배로 왔다.

손바닥 만한 논뙈기 농사지은 소작료로 온 거였다. 내겐 1년 먹을 식량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쌀 2포대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또 들이닥쳤다. 매년 이맘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대천에 사는 80년대 충고 졸업생, 정지식 제자가 보낸 거였다. 매년 제자가 보내는 쌀이지만 기쁨보다는 고마움, 미안함으로 맥질하는 심정이었다.

전원주택 지어준다던 제자, 매년 어김없이 김장해서 보내는 제자, 명절, 생일 다 챙기는 그 제자가 이 날도 눈시울을 달궈주고 있었다. 세상 보기 드문 천연기념물이었다. 제자이기는 하지만 희귀 보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푸짐하게 받아 놓은, 거실의 쌀 8포대가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고 있었다. 순간 이 많은 쌀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숙제였다. 나 먹을 쌀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주문해서 먹는 '저당지수 혼합잡곡'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 끝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 늘 마음 아프게 생각했던 다섯째 남동생, 부산 사는 여동생, 신세 진 분들, 자식들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우선 1포대를 딸의 시부모님께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전립선 암 환자라는 소식을 듣고, 질경이 즙에 봉삼담금주를 들고 오신 어른들께 최소한 예의라도 표하고 싶어서였다. 쌀만으로는 좀 빈약하여 꿀 한 병까지 곁들여 보내드렸다. 45년 전 덕산고 제자들 방문 때에 한 병씩 주고 남겨둔 거였다. 남은 쌀은 힘들게 사는 분, 다섯째 남동생, 부산 여동생, 서울 아들, 대전 딸한테 1포대씩 보내 주었다.

쌀 포대가 차지했던 거실 공간을 말끔히 치웠다. 다 보내고, 나 먹을 쌀 1톨도 없었지만, 왜 이리 마음이 기쁘고 가벼운지 모르겠다. 주고, 보낸 것으로 쌀 포대는 다 사라졌지만 마음은 왜 이리 부자가 누리는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나도 원래는 선물도, 뭐 받는 것도, 좋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많이 변했다. 받는 거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으니 말이다.

과일로 치면 맛도 안 들고, 설익어서 시금털털했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 익어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세월 선생님이 가르쳐준 교훈의 감화 위력인 것 같다.

쌀 포대 8개가 다 없어져 거실이 휑하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왜 이리 가득 찬 희열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을 읽고, 록펠러 자서전을 읽은 것이 이제서 마음의 양식으로 오는 것 같다.

받은 쌀 다 주고서도 마음이 이렇게 기쁘니,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어느 덧 안분지족하며 살라는 노자의 지족상락(知足常樂)이 마음에 자리 잡는 느낌이다. 마냥 즐겁다. 태생은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 철이 좀 드는 것 같다. 그냥 감사를 드린다. 이순(耳順)쯤 철들기에 눈이 뜨이는 것 같더니, 고희(古稀)가 지나서야 인생을 조금 알게 되는 느낌이다.

인생 일장춘몽이라더니, 오늘 따라 천상병 시인의 시가 마음을 다 빼앗아가고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천상병'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이리 큰 것이라면 소유에 집착하여 번민에 빠지지 않으리라.

소풍 끝나는 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소풍 다하는 날까지 주는 기쁨으로 살아가리로다.

안분지족하며 지족상락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신 노자 현인께, 법정 스님께,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모토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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