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공계 논문, 인문사회계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기고] 이공계 논문, 인문사회계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

-과학기술계의 관점에서 '범학계국민검증단' 논란을 보며

  • 승인 2025-07-20 13:07
  • 수정 2025-07-20 13:0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박선규0
박선규 목원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
최근 '범학계국민검증단'이라는 단체가 이진숙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학술 논문을 검토한 의견을 발표하면서 학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 구성과 분석 방식, 그리고 평가의 타당성 측면에서 이공계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체는 '범학계'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구성은 교육학, 사회학, 교육정책학 등 인문사회계 전공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과학, 공학, 의학 등 고도의 실험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공계 분야의 연구자나 학회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 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구성은, '범학계'라는 명칭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흔들게 한다.

이공계 논문은 인문사회계 논문과는 완전히 다른 평가 기준과 연구 생태계를 갖고 있다. 실험 설계와 반복, 데이터 수집과 분석, 통계적 검정, 그리고 과학적 기전 이해까지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이는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는 제대로 해석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 단순한 유사도 분석이나 문장 구조의 비교만으로는 그 기여도나 윤리적 정당성을 판단할 수 없다.

더욱이 이공계 연구는 하나의 실험 결과가 여러 논문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흔하고, 연구자가 수년간 동일한 주제와 방향에서 실험을 반복 수행하면서 논문을 축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연구 흐름이다. 교수는 연구의 전체 방향을 기획하고 연구비를 확보하며, 대학원생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논문에 교수가 제1저자로 등재되는 것은 기여도가 높은 경우 정당한 학문적 관행에 해당한다.



이진숙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대부분은 제자가 제1저자, 후보자는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제1저자로 등재된 일부 논문은 실질적인 기획과 분석에 깊이 관여한 경우이며, 이는 이공계에서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의 설명 일부가 왜곡·확대 해석되며 마치 모든 논문에서 부당하게 제1저자가 된 것처럼 매도되고 있다. 이는 과학 연구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매우 유감스러운 접근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단순히 한 인사에 대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이진숙 교육부총리 후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공계 출신 학자 누구도 공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연구 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이공계 논문을 정치적 프레임에 끼워 맞추고, 비전문가의 기준으로 매도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공직에 나서려는 과학자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단지 특정 인물을 향한 검증이 아니라, 이공계 전체를 위축시키고 과학기술 기반 국가의 미래를 무너뜨리는 '이공계 죽이기'의 시작일 수 있다.

논문 윤리 검증은 각 분야의 전문성과 생태를 존중해야 한다. 이공계 논문의 경우, 해당 분야 학회나 연구윤리위원회 등 전문적 검증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이며, 이는 학문적 공정성과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여론에 기댄 검증 시도는 학문 자체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학기술 강국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연구윤리와 실험정신 위에 세워져 있다. 과학기술계의 전문성과 생태에 대한 이해 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 검증은, 특정 인사에 대한 공격을 넘어서 학문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일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검증이 정당하려면 절차와 주체 역시 정당해야 한다. 정치가 과학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학문은 학문 안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학문 간 차이를 무시한 '정치적 검증'은 오히려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가의 학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공계를 향한 무지한 공격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이 상식의 경계선을 분명히 그어야 할 때다.

박선규 목원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서구 새마을금고 파크골프 어울림 한마당 성황
  2. 인천의 '극지연구소'는 부산 이전 불발...세종시는?
  3. 9월의 식물 '아스타', 세종호수·중앙공원서 만나보세요~
  4. 대전 양성평등주간 기념식
  5.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경로당 활성화 지원사업' 맞춤형 프로그램 마무리
  1. 대산산단 산업위기대응지역 지정에도 '대기업들은 효과 글쎄'
  2. 취약계층 아동에게 희망과 용기 전하다
  3. ‘5대 반칙운전 집중 단속합니다’
  4. 꼬마선비의 유생체험
  5.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태평초, 차세대 리더 육성 위한 혁신 교육 프로젝트

헤드라인 뉴스


메가충청스퀘어 조성사업, 연내 첫 발 뗄 수 있을까

메가충청스퀘어 조성사업, 연내 첫 발 뗄 수 있을까

대전 도심융합특구의 중심 사업인 '메가충청스퀘어'가 연내 청신호가 켜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대전 혁신도시에 자리한 '메가충청스퀘어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이 중요해지고 있다. 3일 대전시에 따르면 메가충청스퀘어 조성 사업은 대전 역세권 동광장 일원에 연면적 22만 9500㎡, 지하 7층-지상 49층 규모로 컨벤션, 상업·주거시설, 호텔 등 주요 시설을 포함한 건물 2개 동을 짓는 사업이다. 대전역 동광장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되는 대규모 복합 개발 프로젝트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정부, 美 관세 피해기업 긴급경영자금 연말까지 13.6조 푼다
정부, 美 관세 피해기업 긴급경영자금 연말까지 13.6조 푼다

정부가 미국의 관세 조치로 피해를 입은 수출기업에 연말까지 13조6000억원 규모의 긴급경영자금을 공급한다. 대전·세종·충남의 경우 대미 수출기업은 1317곳으로 지역 전체의 30.2%를 차지하는 만큼, 상당수 기업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3일 관계부서 합동으로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美 관세협상 후속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정부는 미국과 관세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췄지만, 수출 하방 요인이 여전해 이번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 여력과 자금력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9월 11일 개최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9월 11일 개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9월 11일 열린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은 3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7월 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후 70일 만에 열리는 두 번째 회견이다. 회견의 슬로건은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으로, 90분간 민생·경제와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 등 세 분야로 진행하며, 150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이 수석은 "이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정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 2026학년도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 2026학년도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

  • 꼬마선비의 유생체험 꼬마선비의 유생체험

  • ‘5대 반칙운전 집중 단속합니다’ ‘5대 반칙운전 집중 단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