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천혜의 생태보고가 위협받다

습지, 천혜의 생태보고가 위협받다

<비단길 천리에서 상생을 찾다> 16.상류 습지를 가다

  • 승인 2009-12-29 14:08
  • 신문게재 2009-11-06 12면
  • 이종섭 기자이종섭 기자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금강의 물줄기가 휘감아도는 이 마을은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 충남 금산이 만나는 지점에 방울처럼 달려 있다 해서 방우리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남 금산군에 속하지만 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의 경계를 넘어 무주를 거쳐가야 한다.

▲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위치해 산림생태계와 수상생태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한티습지 모습.
▲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위치해 산림생태계와 수상생태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한티습지 모습.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의 물줄기가 진안과 무주를 거쳐 마을 앞으로 흘러들면서 감임곡류(嵌入曲流)의 미학을 한껏 뽐내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앞으로는 금강의 본류가 크게 ‘S’자를 그리며 휘돌아나가고, 그 사이로 10여호의 가구가 옹기종기 터를 잡고 모여 앉아 있다. 

 이곳은 오지마을이 간직한 천혜의 비경도 그러하지만 한때 금강 상류의 중요한 생태 습지로 알려졌던 곳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하천 부지 내 너른 습지가 형성돼 있고, 강의 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변에 형성된 넓직한 배후습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습지를 따라 육상과 수상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최근까지도 수달과 감돌고기ㆍ퉁사리ㆍ수리부엉이ㆍ돌상어ㆍ꾸구리 등 멸종위기동물의 서식이 확인됐다.

 이러한 연유로 이곳은 지난해 자연ㆍ문화유산 보전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발표한 ‘꼭 지켜야할 자연ㆍ문화유산’ 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최근 UNDP/GEF국가습지보전사업관리단이 보전돼야 할 습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도 했다. 

▲제방에 갇힌 방우리 습지

그러나 현재 이곳의 배후습지는 사실상 습지로서의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하천 정비로 호안을 따라 거대한 제방이 들어서면서 하천 내 습지와 마을 안쪽 배후습지가 연결되던 생태통로가 단절됐고, 식생군락이 형성돼 있어야 할 자리에는 농경지가 들어섰다. 제방 공사로 주민들은 농경지와 진입 도로를 얻게됐지만 습지의 상당부분이 훼손되고 만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방공사 이전 이곳의 습지 면적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추가적인 하천정비가 이뤄질 경우 습지 훼손은 물론 생태적으로도 상당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대전시민환경연구소 길복종 기획실장은 “방우리습지는 생태적 중요성과 하천변 저류지로서 중요한 기능을 지닌 배후습지 가운데 대표적인 훼손 사례로 꼽힌다”며 “도로건설 계획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등 추가적인 훼손 위협도 상존해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방우리 습지와 같이 하천변에 자리한 내륙습지는 경관적으로도 아름다움을 더할 뿐 아니라 생태적 건강성을 간직하며, 홍수조절지로 기능해 강의 범람을 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부분이 습지라 하면 람사르협약을 통해 익히 알려진 창녕의 우포늪 같은 대규모 습지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습지의 가치가 재평가 되고 있음에도 금강유역만 해도 수십 개의 중ㆍ소규모 마을 습지가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거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천연기념물 서식 가능성, 호탄습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마을 앞 금강 본류를 따라 형성된 호탄습지도 그런 경우다.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금산에서 영동으로 향하는 도로 변에 자리한 이 습지는 강의 범람원에 형성된 전형적인 하천습지다.

오랜 세월 하천의 범람과 토사의 유실, 퇴적이 반복되며 강의 본류 쪽에는 자연 제방이 형성돼 있고, 그 뒤로 배후습지가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된 것이다. 자연제방 위로는 미루나무와 버드나무 군락이 발달돼 있으며, 금강 본류의 용출수와 주변에서 흘러드는 계곡수로 수량도 비교적 풍부하게 유지되고 있다.

▲ 미루나무, 버드나무 군락이 안정적으로 잘 발달해 있는 호탄습지.
▲ 미루나무, 버드나무 군락이 안정적으로 잘 발달해 있는 호탄습지.

이곳은 한 눈에 봐도 꽤나 넓은 면적의 습지가 분포해 있다. 면적은 대략 2200여 ㎡ 정도다. 다양한 생물에게는 천혜의 서식처인 셈이다. 실제 이곳에서는 나비잠자리와 호랑꽃무지, 수염치레잎벌레붙이 등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파랑새와 박새, 직박구리 등의 야생 조류가 관찰됐다. 또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양서·파충류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호탄습지는 바로 옆 도로로 인해 산지와의 생태축이 단절돼 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춰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하천의 배후습지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옆으로 지나는 도로의 확장 공사가 예정된 것으로 알려져 보전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진과 함께 이곳을 찾은 물포럼코리아 손석현 간사의 말이다. 바로 옆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될 경우 습지를 매립하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천변저류지 훼손하고 제방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

이곳에서 좀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한티습지도 비슷한 유형의 습지다. 금강의 본류로부터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는 버드나무 군락과 다양한 수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다만 바로 옆에 체신청 수련원이 위치해 있고, 인공제방과 진입도로로 인해 하천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다.

그래도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용출수와 계곡수의 유입으로 일정 수량이 유지되고 있으며, 배후의 산림생태계와 수상생태계를 연결하는 습지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파랑새와 뻐꾸기, 물까치 등의 조류와 좀잠자리ㆍ메뚜기류, 남색초원하늘소 등 다양한 곤충이 관찰되고 있으며, 식물 군락지와 야생동물들의 쉼터로 자리하고 있다.

길복종 실장은 “식생 형성 등 주변 환경으로 미뤄 볼 때 이곳은 과거 하천습지로 꽤 넓은 면적에 분포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도로와 제방 건설로 습지가 상당히 훼손됐음에도 이 정도라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일대에 위치한 방우리 습지.
▲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일대에 위치한 방우리 습지.

이 같은 습지 훼손은 결국 사람의 편의를 위해 제방을 쌓고 하천 폭을 좁혀나가다보니 빚어진 결과다. 호탄이나 한티 같은 배후 습지는 홍수 시 천변저류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습지는 홍수 시 1㏊ 당 120㎜의 수심을 저류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습지를 훼손하고 홍수조절을 위해 댐을 막고 제방을 높여 쌓는 국가의 하천정책은 악순환의 고리이자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금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조성되고 있는 인공습지를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자연습지를 훼손하면서 생태적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인공습지를 만드는 일 역시 모순의 극치다.

▲금강유역 마을 습지 60여 곳, 추가발굴·보전 대책 수립해야

올해 초 (사)물포럼코리아가 진행한 `금강유역 마을습지 발굴 및 보전방안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금강유역에서는 호탄과 한티 같은 중·소규모의 마을 습지가 60여 곳 이상 확인되고 있다. 호탄과 한티 역시 그 동안 이름도 없이 알려지지 않았던 마을 습지를 해당 조사를 통해 발굴하고, 마을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물포럼코리아는 이 중 호탄과 한티 등 경관적으로 우수한 5곳의 습지를 선정해 환경부에 정밀조사와 보전대책 수립을 건의한 상태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금강 유역의 마을 습지는 중ㆍ하류보다 상류지역에 대다수 분포하고 있다. 이는 도시화와 농경으로 중ㆍ하류의 소규모 습지가 대부분 훼손된데 반해 상류지역은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치고, 농촌인구 감소로 놀고 있는 농경지가 습지로 변모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상류지역 습지 역시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는 등의 개발 행위와 인식부족으로 각종 쓰레기가 방치되는 등의 오염원으로 훼손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손 간사는 “넓은 하천 유역의 특성상 습지에 대한 전수 조사가 어렵기 때문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마을 습지도 많을 것으로 본다”며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며, 1개의 인공습지를 조성하는 비용이면 수십 개의 자연형 습지를 보전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종섭·사진=지영철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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