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동굴 근로동원 있었다…"일본군·군속 현장 지휘"

보문산 동굴 근로동원 있었다…"일본군·군속 현장 지휘"

일제강점기 대전중 재학 박영규 회장 첫 증언
"대전중 학생들 보문산 동원돼 동굴 자갈 운반"

  • 승인 2023-12-28 17:04
  • 수정 2024-02-28 10:49
  • 신문게재 2023-12-29 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박영규 회장12
박영규 삼화모터스 회장이 자택에서 이뤄진 중도일보 인터뷰를 통해 일제강점기 대전중 재학 때 이뤄진 보문산 동굴 근로동원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대전 보문산에서 새롭게 발견된 동굴이 언제 누구에 의해 조성됐는지 가늠할 수 있는 목격자가 나와 증언까지 이뤄졌다. 1944~1945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위해 대전비행장을 확장할 때 보문산에서도 일본군 주도로 동굴이 조성됐고, 이때 학생 신분으로 근로 동원돼 손수레에 흙과 자갈을 날랐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공백으로 남은 대전 역사에 대해 기억할 증인이 극소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방공호 발견을 계기로 장기적 조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본보 2023년 12월 11일자 1면 등 보도)

28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구 석교동과 부사동, 호동 일원에서 곡괭이와 폭약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동굴 5개가 잇달아 발견됐다. 마을 주민들조차 한국전쟁 때 피난 용도였다거나 일제강점기 자원개발이었다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일본군이 지휘한 방공호 성격의 동굴조성이 있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일본 교토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배상순 씨와 동행해 26일 만난 박영규(96) (주)삼화모터스 회장은 일제강점기 대전중학교 재학 때 보문산 동굴조성 현장에 근로 동원된 경험을 증언했다. 박영규 회장은 대전중 2학년 때 광복을 맞았고, 자동차 2대를 개조해 택시업을 일으켜 전국택시연합회장을 세 차례 역임했을 정도로 큰 성공을 일궜다. 대전중 재학 때 배운 일본어 교가와 광복 후 이어서 재학한 대전고 교가를 지금도 완창할 정도로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은 대전비행장 활주로를 먼저 닦은 뒤에 보문산 동굴 조성작업이 진행됐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은 "대전중학교 재학 때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서 비행장까지 단체로 걸어가 산을 깎은 흙을 퍼다가 손수레에 실어 비행장 부지에 부리는 일을 반복했다"라며 "비행장 활주로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오후 4시께 학교에 돌아와 1~2시간쯤 수업하고 일과를 마쳤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박 회장은 "위아래로 날개 두 개 달린 미국 비행기가 오면 들어가 숨었던 곳이 보문산 동굴이었다"라며 "대전비행장에 먼저 근로 동원된 후에 보문산 동굴에서 마찬가지로 우리가 도루쿠(손수레)에 자갈을 실어 날랐고, 현장에서 지휘는 일본군과 군속(군무원)이었다"고 기억을 설명했다. 연로한 이유로 중요한 의미 중심으로 호흡을 짧게 조절하면서 이어간 증언에서 박 회장은 "동굴은 팠으나 태평양전쟁 말기라 물자가 달려 동굴 안에 숨길 게 없었어, 동굴을 만들 때 폭약이 사용됐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박 회장의 건강을 고려해 인터뷰는 1시간 남짓 이뤄졌다.

보문산 아쿠아리움의 동굴이 일제 강점기 일본군 지휘부가 사용하기 위한 군사시설이었다는 주장은 이완희 KBS 전 대전방송총국장이 그의 저서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 요새였다'와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등 여러 연구자의 논문에서 제시되었으나, 보문산에 제2~6호 동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나 실제 학생 신분으로 근로 동원돼 종사한 이의 증언이 수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MG_4612
대전 중구 호동에 위치한 동굴 입구 모습.
류기정 금강문화유산연구원 이사장은 "동굴 발견과 증언을 계기로 일제강점기의 대전 역사를 대전시가 체계적으로 수집해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라며 "대전시립박물관이나 문화관광과가 근대유산 발견을 이어가 책임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대평동 '종합체육시설' 건립안 확정...2027년 완공
  2.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전 반대 "정치권 힘 있는 움직임 필요"
  3. 장애인활동지원사 급여 부정수급 수두룩…"신원확인·모니터링 강화해야"
  4. 2025년 국가 R&D 예산 논의 본격화… 출연연 현장선 기대·반신반의
  5. [썰: 기사보다 더 솔깃한 이야기] 최규 대전 서구의원, 더불어민주당 복당?
  1. 학생 온라인 출결 시스템 '유명무실' 교원들 "출결 민원 끊이지 않아"
  2. 대전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 이장우 "법 어길 수 없다" 중앙로 지하상가 강경입장
  3. 한화이글스-GS리테일, 플래그십 편의점 스토어 오픈
  4. 천안도시공사-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 노사 간담회 실시
  5. 감스트,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서 팬사인회… 인파 몰려 인기실감

헤드라인 뉴스


장애인활동지원사 부정수급 만연…"모니터링 강화해야"

장애인활동지원사 부정수급 만연…"모니터링 강화해야"

<속보>=대리 지원, 지원시간 뻥튀기 등으로 장애인 활동지원사 급여 부정수급 사례가 만연한 가운데, 활동지원사 신원확인과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도일보 2024년 5월 2일자 6면 보도> 2일 취재결과, 보건복지부 장애활동지원 사업으로 활동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가사, 사회생활 등을 보조하는 인력이다. 하지만, 최근 대전 중구와 유성구, 대덕구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 급여 부정수급 민원이 들어와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대부분 장애 가족끼리 담합해 부정한 방식으로 급여를 챙겼다는 고발성 민원이었는데, 장..

2025학년도 충청권 의대 389명 늘어난 810명 모집… 2026학년도엔 970명
2025학년도 충청권 의대 389명 늘어난 810명 모집… 2026학년도엔 970명

2025학년도 대입에서 충청권 의과대학 7곳이 기존 421명보다 389명 늘어난 810명을 모집한다. 올해 고2가 치르는 2026학년도에는 정부 배정안 대로 970명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전지역 의대는 199명서 156명이 늘어난 355명을 2025학년도 신입생으로 선발하고, 충남은 133명서 97명 늘려 230명, 충북은 89명서 136명 증가한 225명의 입학정원이 확정됐다. 2일 교육부는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과 함께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제출 현황'을 공개했다.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증원 총..

"앞으로 욕하면 통화 종료"… 민원 담당 공무원엔 승진 가점도
"앞으로 욕하면 통화 종료"… 민원 담당 공무원엔 승진 가점도

앞으로는 민원인이 담당 공무원과 전화 통화를 하며 폭언하는 경우 공무원이 먼저 통화를 끊어도 된다. 기관 홈페이지 등에 공개돼 이른바 '신상털기(온라인 좌표찍기)'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공무원 개인정보는 '성명 비공개' 등 기관별로 공개 수준을 조정한다. 행정안전부는 2일 국무총리 주재 제38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3월 악성민원에 고통받다 숨진 채 발견된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 사건 이후 민원공무원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여론에 따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덥다,더워’…어린이날 전국에 더위 식혀줄 비 예보 ‘덥다,더워’…어린이날 전국에 더위 식혀줄 비 예보

  • 도심 속 공실 활용한 테마형 대전팜 개장…대전 혁신 농업의 미래 도심 속 공실 활용한 테마형 대전팜 개장…대전 혁신 농업의 미래

  • 새하얀 이팝나무 만개 새하얀 이팝나무 만개

  • 2024 대전·세종·충남 보도영상전 개막…전시는 7일까지 2024 대전·세종·충남 보도영상전 개막…전시는 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