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④동구 세천에 주민들 동원된 방공호…곡괭이 자국에 숙연

[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④동구 세천에 주민들 동원된 방공호…곡괭이 자국에 숙연

신상동 깊이 20m 동굴 벽면에 손길자국
일제강점기 동원 세천 주민들 굴착 추정
목동성당에서도 일제핍박 후 순교 역사도

  • 승인 2023-12-13 17:50
  • 수정 2024-02-28 10:49
  • 신문게재 2023-12-14 3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보문산만큼 대전의 역사를 품은 산이 또 있을까. 바위에 새겨진 고려 때 불상부터 시루봉 정상 백제의 성곽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인 별장과 을유 해방기념비가 한 곳에 머문다. 한국전쟁 대전지구 전승비(UN탑)와 남북분단의 망향탑 역시 숲속에 어우러진다. 이런 보문산에 전에 보고된 적 없는 동굴 5개가 최근 잇달아 발견됐다. 정을 치고 화약을 터트려 돌을 나른 흔적이 역력한 이들 동굴은 누가 왜 조성했을지 추적해 본다. <편집자 주>

IMG_5230
대전 동구 신상동에 있는 동굴 벽면에 곡괭이로 굴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세천동 주민들이 강제동원돼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4. 수탈과 참상의 전쟁유적

대전 동구 신상동 동굴은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이역만리 조선에 미친 영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옛 세천저유소 인근에 위치한 이곳 동굴은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동굴 벽면에 남은 곡괭이질 흔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두 번, 백 번, 천 번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벽면을 할퀸 곡괭이질 흔적이 손이 닿기 어려운 천장까지 덮고 있다. 곡괭이가 바위에 부딪혀 한 줌의 흙을 토해내기를 얼마나 반복해야 동굴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곳 신상동 동굴은 Y자 형태의 두 방향으로 갈라져 최대 20m 깊이에 폭 3~4m 규모로 일제강점기 세천 주민들이 동원돼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동굴 앞에 대청호가 들어찼지만, 댐이 조성돼 호수가 만들어지기 전 세천마을에서 산 중턱까지 올라온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상동 동굴을 2006년께 탐사한 (사)대전문화유산울림은 이곳이 일제강점기 주민들이 동원됐음을 규명했다. 동굴 인근에 거주한 주민이 일제 강점기 말에 주재소의 지시를 받아 동굴 조성작업에 동원되어 수행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올해 취재에서는 신상동 동굴 조성에 직접 참여한 이를 찾을 수 없었다.

IMG_5104
대전 동구 식장산에 있는 방공호. 일제강점기 탄약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주진 대전문화유산울림 이사는 "2006년 마을주민 인터뷰한 결과 일제강점기 말 주재소가 주체가 되어 마을주민들을 동원해 곡괭이로 대피 목적으로 굴을 팠고, 증언한 어르신도 그때 손을 다쳐 어려웠다고 했다"라며 "미군 저유소로 쓰이던 곳에서 가깝고 이번 동굴에서 500m 떨어진 지점에 두 번째 방공호가 있어 당시 굴착에 동원된 인력 규모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대전 중구 목동에 위치한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건립된 대전 최초의 성당으로 캐나다 출신의 제7대 베드로 주임신부가 일제의 핍박을 받아 장기간 연금생활을 마친 1946년 1월 이곳 수도원에서 순교한 역사가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적국인 캐나다 신부라는 이유로 같은 해 베드로 신부를 전쟁 포로 신분으로 수도원 도서실에 감금하고 다음 해부터 해방때까지 공주로 보내 연금생활을 강요했다.

베드로 신부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석방되어 성당 신부로 재부임했으나 3년 9개월의 연금생활의 악화된 건강상태에서 천연두를 겪어 1946년 목동 수도원에서 순교했다. 6·25전쟁 때는 수도원이 공산당 충남도 정치보위부 및 수용소로 사용되면서 사제들이 총살된 순교의 현장이면서 신자와 민간인 등 수백 명이 학살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정치보위부가 수감자들에게 노역을 시켜 수도원 지하실과 연결된 방공호를 만들었는데 지금 성당에도 예배공간으로 직접 연결되는 터널 구조물이 남아 있다. 수도원은 재건축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성당은 건립 당시 모습을 간직하는 중으로 예배당 밑에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지하실도 존재해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IMG_5285_edited
구 신상동에 있는 동굴 벽면에 곡괭이로 굴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세천동 주민들이 강제동원돼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밖에 동구 식장산에 조성된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방공호도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일본군이 부산 태종대에 조성한 시설과 유사한 형태로 식장산 정상에 모종의 시설을 운영해 방어 목적으로 이같은 시설물을 만들었다는 주장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김병기 의원·문진석 의원은 원내운영수석
  2. AI 시대, 컨택센터 미래전략은 '경험 중심 플랫폼'으로의 진화
  3.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지킨 참전영웅들…어린이 위로공연에 '눈물'
  4. 아산시, 취약지역 하수도시설 일제 점검
  5. 아산선도농협, 고추재배농가에 영농자재 지원
  1. 아산시,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개선 적극 추진
  2. 천안시의회 권오중 의원, "교통약자 보호 및 시민 보행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3. 천안시, 제77회 충청남도민체육대회서 주택안심계약 홍보
  4. 천안시의회 정도희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마을행정사 운영에 관한 조례안 본회의 통과
  5. 천안법원, 신체일부 노출한 채 이웃에게 다가간 20대 남성 '벌금 150만원'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대표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집권 초부터 PK 챙기기에 나서면서 충청권 대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진정성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자칫 충청 홀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대목인데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 또는 개헌 등 행정수도 완성 로드맵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가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와 장대교차로 입체화 추진 예정지 등 주요 사업지를 찾아 현장점검을 벌였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현장, 교육위원회는 서남부권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찾았는데, 을 찾았는데, 이번 현장점검에 직접 나선 조원휘 의장은 "앞으로 민선 8기 주요 사업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13일 유성구 일대 교통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았다. 먼저 유성복합터미널 BRT(간선급행버스체계)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는 유성구..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힘입어 경기 당일 주변 상권들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야구장 중 주변 상권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다. 15일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개막 후 70일간 야구 경기가 열린 날 전국 9개 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13%, 2024년 25%, 올해 31%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141만 명의 데이터 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