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요안나의 일상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요안나의 일상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5-01-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친구 요안나(영세명, 가톨릭)를 보면서 가족이라는 구성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둥근 원과 같아서 어느 한군데 바늘구멍만 한 틈만 있어도 가족이라는 형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한 가족의 일원으로 아내의 자리에서, 엄마의 자리에서 남편과 두 아들의 사이를 오가며 윤활유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을 볼 때 친구가 한없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불볕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해 여름, 친구는 유성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은행동 성심당 제과점에 왔다며 차 한잔하자고 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나갔더니 친구는 빵을 산 큰 쇼핑백을 양손에 든 채 땡볕에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이 무더위에… 맛난 빵은 서울에 더 많잖아?" "(그녀는 까르르 웃더니)으응, 이거 TV에서 모 연예인이 먹어서 유명한 건데, 큰애가 먹고 싶다고 해서 1시간 넘게 기다려서 겨우 샀네. 힘들어 죽을 뻔했어." 하지만 친구는 나와 약속만 없었다면 더 기다려서 더 많이 샀을 기세였다. 그녀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나는 순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故事)가 떠올라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친구의 자식 사랑은 남달랐다. 친구는 결혼을 늦게 한데다, 아들 둘이 대학교 재학 중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두 아들 모두 아직 대학생이다. 그러니 아들과 세대 차이가 날 듯도 하지만 친구는 대학생 못잖은 감각으로 맛집 탐방, 영화나 연극, 갤러리 관람 등 하며 대학생 아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어디 그뿐일까, 친구는 야구를 좋아해서 결혼 전에도 야구 시즌만 되면 도시락을 싸 들고 야구장에 가서 살다시피 하더니, 결혼 후에는 아들과 같이 가서 목이 아플 정도로 큰 소리로 응원했다. 친구 남편은 대기업 임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기에 친구가 아빠 몫까지 아이들과 같이했다.

하지만 친구는 가정교육은 엄격했다. 경제관념도 일찍부터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용돈은 각자 아르바이트해서 쓰도록 하는 둥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도록 해선지 때론 아이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친구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가족 모임을 통해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남편과 의논하여 아이들의 호기심을 가능한 한 충족 시켜주기에 아이들도 크게 불만은 없는 듯했다.



한번은 친구가 나에게 "아들 두 녀석이 자기네들 용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는데 제법 돈을 모은 것 같다"고 자랑인지 모를 말을 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반문했다. "아직 대학생인데…" "으응, 가족 모임 때 애들이 아빠한테 비트코인에 대해 말하며 용돈으로 투자했다고 하니까, 아빠가 들어보더니 해보라며 각각 얼마간의 용돈을 더 줬대." 친구 남편은 아들 둘이 군 제대 후 복학생이니 성인 대접을 했던 것 같다. 그렇듯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기에 아이들도 부모한테 주저 없이 의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 비트코인 투자 실패담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서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그러잖아도 큰애는 손해를 좀 본 것 같다며, 친구도 아들에게 스크랩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친구는 "아들 두 녀석은 비트코인에서 아주 손을 뗀 것 같다"고 말했다. 문득 그 가족이 화목한 건 친구의 숨은 노력이 있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자유 지향적인 아들 사이를 오가며 친구가 지혜롭게 대처하며 소통 역할을 해서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 (Jean Pau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는 우리의 마음속에 얼을 주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

그런 친구에게 어느 날부터인지 고민이 생겼다. 다름 아닌 남편 은퇴가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아들 두 녀석이 아직 대학생인데 남편이 은퇴하면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나, 하루하루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지만 친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친구 남편은 은퇴하자마자 곧바로 학원에 등록하여 자격증을 취득, 계약직 직장에 재취업을 한 것이다. 과거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던 때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남편을 보며 친구는 남편이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니 친구는 매일 아침 점심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해서 출근하는 남편 손에 들려줬음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 남편은 새 직장에서도 성실히 근무해서 올해 초 재계약을 했다는 말을 듣자,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 같아 친구가 부럽기 조차했다.

친구 역시 개인 사업을 하던 중 건강이 약해져서 잠시 쉬는 동안 매일 저녁 3시간씩 어린아이 돌보미를 하는데 이 또한 가족이 모두 동참한다. 한참 감수성이 민감한 대학생인 큰아들은 돌보미 하는 엄마가 못마땅할 텐데도 어쩌다가 돌보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오기라도 하면, 친동생처럼 잘 돌봐줘서 아이도 두 아들을 잘 따른다고 한다. 친구 가족이 저녁 외식을 할 때도 돌보미 아이도 동석한다니 정말 화목함이 솟아나는 가정이 아닐 수 없다.

그 친구가 내게도 잊을 수 없는 미래를 선물했다. 다름 아닌 올해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만화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의 이야기』 전 4권(애니북스)을 선물 한 것이다. 김은성 작가는 친구의 시누이로 가끔 안부는 전해 들었지만, 작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친구는 베스트셀러가 꿈인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일까, 씨익 웃으면서 책을 건네주는데 콧잔등이 시큰했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두루 챙겨주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나는 그 책을 볼 때마다 친구 요안나를 생각하며 수없이 속삭인다. 친구야, 고마워!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2.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지구지정 입안제안 신청 '사업 본격화'
  3. <속보>갑천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현장에 잔디 식재 정황…고발에도 공사 강행
  4. 대전교육청 종합청렴도 2등급→ 3등급 하락… 충남교육청 4등급
  5. 경북도, 올 한해 도로. 철도 일 잘했다
  1. 이재석 신임 금융감독원 대전세종충남지원장 부임
  2. 주택산업연구원 "내년 집값 서울·수도권 상승 유지 및 지방 상승 전환"
  3. 대전세종범죄피해자지원센터, 김치와 쇠고기, 떡 나눔 봉사 실시
  4. 대전·충남 행정통합 속도...차기 교육감 선출은 어떻게 하나 '설왕설래'
  5.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둔곡초중, 좋은 관계와 습관을 실천하는 인재 육성

헤드라인 뉴스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주도해온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만났다. 양 시도지사는 회동 목적에 대해 최근 순수하게 마련한 대전·충남행정통합 특별법안이 축소될 우려가 있어 법안의 순수한 취지가 유지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고 밝혔다. 가장 이슈가 된 대전·충남광역시장 출마에 대해선 김 지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불출마 할 수도 있다 라고 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생각은 같다"라고 말했다. 이장우 시장은 24일 충남도청을 방문, 김태흠 지사를 접견했다. 이 시장은 "김태흠..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4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해 "충남 대전 통합은 여러 가지 행정 절차가 이미 진행되어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면 빠르면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서울특별시 못지 않은 특별시로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통령실에서 대전 충남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통합단체장을 뽑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해 여당 차원에서 속도전을 다짐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