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역사 속 을사년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역사 속 을사년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5-02-16 17:21
  • 신문게재 2025-02-17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백낙천 교수
혹독했던 무더위를 겨우 견디고 맞이한 지난 해 12월의 충격과 탄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3일 느닷없이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사건과 국민적 분노, 탄핵 정국 속의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송두리째 잠식당했으며 그로 인한 국제 신인도의 하락과 경기 침체에 따른 참담함과 삶의 피폐함은 온전히 우리가 감당할 몫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는 온 국민을 가눌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한순간 부모, 형제자매와 동료를 잃은 유가족들의 절망과 비탄에 온 나라가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졌다. 희망으로 출발해야 할 2025년 을사년이 한숨과 분노로 시작한 것이다. 을씨년스러운 을사년 새해부터 잠 못 이루고 깊은 시름만 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란 극복의 저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푸른 뱀이 허물을 벗듯 놀라운 회복력으로 지금의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 지혜를 을사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서 찾고자 한다.

조선 전기 지배 정치의 양대 세력은 훈구파와 사림파였다. 조선을 건국하고 신흥 사대부로 불린 이들 중에 중앙 정치의 전면에 나선 훈구파는 집현전을 거쳐 성장하여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와 공신이 되면서 점차 정치 세력화하면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조선의 통치 이념을 체계화했지만 점차 관직을 독점하고 특권을 독차지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반면, 지방 향리에서 중앙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다가 성종 때 홍문관을 강화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림파는 중종반정 이후 세력을 확장하면서 기존의 훈구파와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사림파는 중종반정 이후 기사회생하였지만 위훈삭제(僞勳削除)를 문제 삼은 훈구파의 반격으로 일어난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의 세력이 위축되었지만, 1544년에 조광조의 신원(伸冤) 문제가 거론되면서 다시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재연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난 세자 호(훗날 인종)의 외숙인 윤임과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가 난 경원대군(훗날 명종)의 외숙인 윤원형 두 외척 간의 왕위 승계를 둘러싼 정치적 대결이 벌어졌다. 윤임 일파의 대윤(大尹)과 윤원로, 윤원형 형제 일파의 소윤(小尹) 간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중종이 승하하고 세자였던 인종이 즉위하여 윤임 일파가 득세하는 듯했지만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경원대군인 명종이 즉위하자 외숙인 윤원형이 문정왕후의 지시로 음모를 꾸며 윤임과 그 일파를 제거하고 정치 보복을 단행하였다. 외척 간의 정적 제거로 촉발되어 사림파의 다수가 제거된 이 사건이 을사년 1545년(명종 즉위)에 일어난 을사사화였다.

우리 역사에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을사년이 있다.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제는 1895년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서서히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나갔다. 급기야 1905년 7월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으로부터 대한제국의 종주권을 인정받았고,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9월 5일에는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대한제국의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승인받게 되자 일제는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나갔다. 일제의 침략은 1905년 11월 9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에 파견되면서 더욱 노골화되었으며 급기야 고종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11월 17일 고종이 어전 회의에 참석 못하자 일제는 그 틈을 이용하여 내각 회의에서 대신들에게 일일이 찬반 여부를 물어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등을 제외한 나머지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등 을사오적들은 억압적 조약에 찬성하여 맺어진 것이 을사년 1905년(광무 9)에 일어난 불법적 조약인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논설로 일제의 침략성과 을사오적을 통렬하게 비판했고, 민영환은 자결로써 국권침탈의 울분을 토함으로써 민족의 정기를 드높였다.

우리는 역사 속 을사년에 벌어진 정치적 갈등과 혼란으로 초래된 비극적 결말과 국운이 기울 때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의인의 모습에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날이 밝아오지 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이 시간에 역사는 끝내 발전한다는 희망과 정의는 기필코 승리한다는 믿음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프로야구 개막'... 대전신축 구장 활용 방안 만들자
  2. 멀어지는 '벚꽃 추경'… 충청권 현안 사업 어쩌나
  3. 한국수자원공사, 대한민국 물산업 '초격차 도약'에 박차
  4. 충남 베이밸리 건설 사업 '순항'
  5. 인구문제 인식개선 릴레이 캠페인
  1. 제69회 신문의 날 표어.캐릭터 수상작 선정
  2.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5년 3월24일 월요일
  3. [독자칼럼]기업의 광고목적과 성공적인 전략
  4. 대전시, 국토부 제4회 녹색건축평가 최우수상 수상
  5. 글로벌 노마드의 도쿄 이야기 <도쿄의 기억과 발견>

헤드라인 뉴스


한덕수 탄핵 기각… 87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복귀

한덕수 탄핵 기각… 87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복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됐다. 국회의 탄핵안 의결 87일 만으로, 한 총리는 곧바로 직무에 복귀한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오전 10시 대심판정에서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8명 중 5명(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김복형)이 기각 의견을, 1명(정계선)은 인용 의견을, 2명(정형식·조한창)이 각하 의견을 내면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한 총리는 2024년 12월 27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직무가 정지됐었다. 탄핵 사유는 비상계엄 공모·묵인·방조와 헌법재판관 임명..

공무원 요람 `(가)국가채용센터`, 2031년 세종시에 신설
공무원 요람 '(가)국가채용센터', 2031년 세종시에 신설

가칭 국가채용센터가 2031년경 중앙행정의 중심지인 세종시에 들어설 전망이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지방법원·검찰청 개원 시점과 유사하다. 국가채용센터는 일명 국가고시센터로 통하고, 국가공무원의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행복청(청장 김형렬)과 인사혁신처(처장 연원정)는 2025년 3월 24일 행복도시 내 '국가채용센터(가칭)'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국가균형발전과 행복도시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다가온다. 국가공무원 다수가 근무하는 43개 중앙행정기관이 자리를 잡고 있고, 인근에 정부대전청사도..

산불 가장 위험한 시간대는 `오후 3~5시`…화재원인 1순위 담배꽁초
산불 가장 위험한 시간대는 '오후 3~5시'…화재원인 1순위 담배꽁초

전국적으로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인한 산불과 화재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화재 예방에 대한 각별한 경각심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금산소방서는 입산 시 인화물지 소지 금지 등 예방수칙 준수를 당부하며 봄철 화재 예방을 위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24일 금산소방서에 따르며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4월 중 충남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1066건으로 이로 인해 인명 피해는 25명(사망 6명, 부상 19명), 재산 피해는 192억 9천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금산군의 경우 2023년 4월 복수면에서 발생한 산불로 1..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농사철 앞두고 농기계 수리 농사철 앞두고 농기계 수리

  •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일반부 대구LFS 결승 진출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일반부 대구LFS 결승 진출

  •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5~6학년부 예선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5~6학년부 예선

  •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초등 3~4학년부 예선 제19회 공주금강배 전국풋살대회…초등 3~4학년부 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