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대전 대기업 유치, 겉도는 헛바퀴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대전 대기업 유치, 겉도는 헛바퀴

강병수 충남대 명예교수.대전학연구회 회장

  • 승인 2025-02-16 17:21
  • 신문게재 2025-02-17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강병수
강병수 명예교수
과학기술도시(technopolis)를 표방하는 대전시에 대기업의 유치는 그 어느 지역경제 전략보다도 중요하다. 자동차에 바퀴가 달려 있듯이 과학기술도시도 바퀴가 필요하다. '과학기술도시 바퀴(technopolis wheel)'는 6개의 주요 바큇살, 즉 연구대학·연구소, 대기업, 창업중소기업,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지지집단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대전 과학기술도시는 대기업이란 바퀴살이 빠져 아쉽게도 헛바퀴만 계속 겉돌고 있다.

1950, 1960년대는 제조업 전성시대였다. 항만이나 운하가 없는 내륙도시들은 제품의 운송을 값비싼 육로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중후장대형 제조업은 꿈도 꾸지 못하고, 노동집약적인 도시형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 전성시대 경쟁력이 단연 높았던 중후장대형 제조업인 제철, 정유, 조선업 등은 내륙도시에의 입지가 불가능하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첨단산업은 제품이 워낙 고가(高價)이고 제품 가격 대비 물류비가 낮아 교통비보다는 오히려 다른 요인으로 자리 잡는 경향이 커졌다. 첨단산업은 교통비에 구애되지 않고 입지가 자유로운 산업(foot-loose industry)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첨단산업이 발흥하면서 수도(首都)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강한 경쟁력을 갖는 과학기술도시를 꿈꾸는 내륙도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첨단산업을 도시 중심산업으로 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처에서 일어난 것이며, 그 가운데 한 도시가 바로 대전이다.



과학기술도시에 성공한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정도 기반형성단계와 도약단계를 거쳐 성숙단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상당수가 첨단산업과 관련된 일자리에 종사하고 첨단산업이 그 지역의 중심산업이 되어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과학기술도시를 견인한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는 1973년 건설을 시작하여 1998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를 대전의 성장엔진을 넘어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원대한 희망을 담아 '대덕밸리'로 선포하였다. 대덕연구단지 건설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대전시민들은 여전히 과학기술도시를 대전의 비전으로 삼고 과학기술도시를 열망하고 있으나, 대다수 시민은 과학기술도시와 첨단산업 분야와 상관없는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연구단지에서 연구·개발된 많은 첨단기술이 지역기업에게 이전되려면 이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이 필요하고, 대기업은 협력기업과 하청기업, 첨단벤처기업과 관련 기업들을 주위에 거느리면서 산업생태계를 만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기업 본사가 서울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는 외부조직, 특히 중앙정부와의 접촉 가능성이었으며, 다음으로 프리스티지(prestige), 유능한 인력 확보, 대중교통과의 접근 가능성, 다른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s)의 조언 순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과학기술도시에서는 생활권 내에 소재하는 물류공항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첨단제품 운송의 90% 이상이 항공운송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제품은 가격 대비 낮은 물류비용뿐만 아니라 제품의 특성상 외부에 장기간 노출을 피할 수 있는 항공운송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스틴시, 일본의 교토시, 독일의 뮌헨시, 프랑스의 리옹시 등 각 나라 내륙도시들이 첨단 과학기술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배경에는 공항의 역할이 크다.

대전은 과학기술도시를 비전으로 삼으면서, 국가 이공계 핵심 연구소 대부분을 보유하면서도 과학기술도시로서 도약단계를 맞지 못하고 50년째 기반형성단계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도시는 밸리(belly)항공 운송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충분한 규모와 용량을 갖춘 물류공항의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내륙도시이지만, 시민들이 오랫동안 과학기술도시를 염원하고 있으므로 시대 상황에 맞게 첨단 대기업 유치에 필요한 인프라와 매력적인 지역어메니티, 그리고 유치정책들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바퀴만 겉도는 안타까운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병수 충남대 명예교수.대전학연구회 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2.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개 부문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충남경제진흥원 '2025 중소기업 육성자금' 기업 만족도 94.5%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