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무속 열풍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무속 열풍

현옥란 뉴스디지털부 부장

  • 승인 2025-04-02 13:00
  • 신문게재 2025-04-03 18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GettyImages-jv1381307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해 연말 KAIST 연구팀이 그라운드서울에서 선보인 'ShamAIn'이라는 이름의 'AI 신당'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전시됐던 신당의 사진을 보면 한 평가량의 작은 박스형 부스 속에 오색 띠, 위패, 촛불 등으로 내부를 꾸며놓아 마치 무당집 같다. 게다가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기반으로 한 사주까지 볼 수 있어 체험자들이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사주(四柱) 또는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중국의 고대 세계관·철학인 사주(四柱, 4개의 기둥)와 팔자(八字, 8개의 글자)를 바탕으로 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인생의 선천적 운명과 자연의 이치를 알아보고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 같은 사주는 AI에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데이터와 점술을 학습시킨다면 '용한 AI 무당'이 탄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반면 샤머니즘은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운과 명을 논하는 것으로, 통계학적인 사주와는 달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고대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사회여서 대부분의 왕이 신관 또는 무당의 역할을 겸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예부터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처럼 왕이 중심이 돼 무속신앙 관련 행사가 많이 이루어진 기록이 있다. 고려 초까지만 해도 정식 사회 계급으로 인정받았던 무속인. 이들은 이후 조선 시대에 성리학이 국학이 되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해 기생, 노비, 승려, 백정, 광대, 공장, 상여꾼 등과 함께 천민 대우를 받았다. 현대에 들어서는 기독교 등 종교적인 영향까지 더해 미신을 조장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이던 시선과 인식은 최근 들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지난해 영화 '파묘'에 출연한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가 화제가 되면서 'MZ 무속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유튜브 등 SNS에서도 신점, 무당, 역술인 등을 소재로 다룬 콘텐츠들의 인기가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종편이나 지상파에서도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는 개그맨, 무당으로 활동하는 현역 배우가 출연해 무당이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해졌다. 더 나아가 한 지상파에서는 무당, 역술가, 타로 마스터 등의 직업을 가진 젊고 매력적인 MZ 점술가들을 출연시킨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 정부 들어 뉴스에 이름이 거론된 무속인도 한둘이 아니다. 천공, 지리산 도사(명태균), 건진법사, 아기보살, 비단아씨 등이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여러 정관계 인사들과 함께 지금도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가 무속에 심취해있다는 것은 대선 후보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경선 토론회에서는 손바닥에 그린 '王(임금 왕)'자로 논란이 뜨거웠고, 당선된 후에는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며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도 당시 그들과 가까운 무속인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또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는 천공의 발언에서 시작됐다거나 의정갈등의 발단이 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역술인인 천공의 이름인 '이천공'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나돌았다. 12·3 비상계엄 이후로는 유튜브에 윤 대통령과 계엄을 소재로 한 무속·사주 콘텐츠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용한 무당에게 윤석열 사주를 줬더니', '촬영인걸 숨기고 윤석열·김건희 사주 넣자, 경악!' 같은 영상들이 지금도 꾸준히 올라오는 상황이다.

연말연시 때마다 단골무당이나 점집 또는 온라인에서 새해 운세를 점쳐보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소소한 이벤트가 된 지 오래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일이 잘 안 풀릴 때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과 압박이 극심할 때 무속에 의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무속에 빠진 우리나라를 보면 좀 걱정스럽다. 그만큼 국민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 아닐까.

현옥란 뉴스디지털부 부장

현옥란-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대전 교육공무직 파업에 공립유치원 현장도 업무공백 어려움
  4. 인도 위 위협받는 보행자… 충남 보행자 안전대책 '미흡'
  5.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1.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2.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3. [인터뷰]"지역사회 상처 보듬은 대전성모병원, 건강한 영향력을 온누리에"
  4.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5. 박정현 "기존 특별법, 죽도 밥도 안돼"… 여권 주도 '충청통합' 추진 의지

헤드라인 뉴스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전남을 시작해 충청권을 가로질러 수도권으로 향하는 초고압 송전망이 농경지와 주택가, 학교 일원을 경유해 건설될 것으로 예상돼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에 또다시 대규모 국가산업단지를 신설하고 입주 기업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 지방에 대규모 송전선로를 건설할 때 환경권과 생활권 침해 피해는 지역에 돌아온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7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앞으로 대전을 관통해 건설될 예정인 '신계룡-북천안 345㎸ 송전선로 시설 계획을 규탄하는 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정부는 2022년부터 2036년까지 송변전설..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이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글로벌 AX(인공지능 전환) 혁신도시'로 거듭난다. 대전시와 한남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KT, 비케이비에너지(주), ㈜엠아르오디펜스는 17일 '한남대 AX 클러스터 및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연구기관과 AI 전문기업을 지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거점센터는 한남대 캠퍼스 부지 7457㎡ 규모에 2028년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이날 협약식에..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