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손에 쥔 20만 원, 놓치는 건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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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손에 쥔 20만 원, 놓치는 건 2년

  • 승인 2025-05-21 14:15
  • 김정식 기자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경남 거제.

요즘 가장 많이 오가는 말은 "20만 원은 언제 주노"다.

말끝마다 붙는 물음표는 궁금증이라기보다는 확신이다.

받아야 마땅하고, 줘야 하는 것이고, 안 주면 뭔가 잘못됐다는 정서.



누가 심어줬을까.

그 말의 온기를 따라가 보면 정치가 있고, 선거가 있고, 표가 있다.

시장통 어머님의 한마디는 길다.

"20만 원 주면 손자 내복도 사고, 벽걸이 선풍기도 하나 사문 좋지."

여름 앞두고 쓸 자리는 많다.

하지만 이 말은 곧 '내복 사려면 시청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활을 책임져야 할 가족의 손이 아니라, 정치가 현금을 들고 나타나야 움직이는 구조.

우리는 지금 그 구조 안에서 묻는다.

진짜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있는가.

현금은 따뜻하다.

그러나 재정은 구조다.

지금 손에 쥐어진 20만 원은 당장은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은 2년 뒤 복지 예산, 투자 예산, 도서관 개관일, 사회복지사 채용 건수, 아동 돌봄센터 운영 일수에서 깎여나간다.

문제는 이걸 아는 이들이 말이 없다는 거다.

몰라서가 아니라, 말하면 표가 떨어지니까.

구조를 말하면 욕먹고, 감정을 자극하면 박수 받는 구조.

선거가 끝났고, 유권자는 돌아갔고, 정치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린다.

거제는 어렵다.

조선소는 멈췄고, 상가는 비었고, 집값은 떨어졌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써야 할 돈이 있고, 아껴야 할 돈이 따로 있다.

한 번 쓰고 마는 돈은 반짝 불빛이고, 시스템을 바꾸는 돈은 등불이다.

지금 20만 원은 불빛이다.

따뜻하되, 오래가지 않는다.

인생의 굴곡은 평탄하고 편안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고통을 감싸 안은 채 앞을 보는 힘, 그게 희망이다.

지금 필요한 건 곶감 하나 쥐여주며 눈을 감기게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고개를 들게 하고 앞을 보게 만드는 동기와 비전이다.

아이를 위한 도시를 말하기 전에, 아이가 떠나지 않을 도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서민이 숨 쉬는 도시를 만들기 전에, 서민이 이사가지 않을 도시를 먼저 남겨야 한다.

정치는 현금을 나눠주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문제는, 지금 거제에서 그 설계도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시민의 행복이 그 달콤한 20만 원에 있을까.

아니면 그래도 지금 견디면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품은 마음에 있을까.

20만 원을 주자는 말은 쉽다.

안 주자는 말은 어렵다.

그러나 정치가 쉬운 말만 한다면, 쉬운 결말밖에 남지 않는다.

거제의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다.

손에 쥔 20만 원보다, 놓치는 2년이 더 무섭다.
거제=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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