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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교수 |
제발 대선 후보들이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좋겠다. 무서운 계엄과 탄핵 때문에 아직도 뒷목이 서늘한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치러지는 대선이다. 아무리 정치판이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곳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내란으로 상처받고 무너진 국민의 마음에 통합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 대신 상대방을 죽고 죽이려는 말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말과 글로 진검 승부를 겨루는 대선판이 돌아올 때면 나는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생각한다.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품격 있는 언어와 유머로 삶의 무게에 지친 국민을 위로해 주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이다. 두 분의 연설 비서관을 지냈던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이 두 분의 유머와 해학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로 TV를 통해 IMF 국난으로 주름진 국민들의 얼굴을 잠시나마 웃게 해준 분이었다. 1998년 TV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한 김 전 대통령에게 IMF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월급을 반납할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대통령은 "나야 청와대에서 먹여주고 재워 주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또 다른 한 청중의 건강은 괜찮으시냐는 질문에 그분은 한 아주머니가 자기를 보더니 "치매 걸렸다더니 괜찮구만"이라고 말했다는 비화를 소개해서 온 국민을 뒤집어 놓으셨다. 절망의 시절 우리는 대통령의 환한 웃음을 보며 평온과 안심을 하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유머와 위트의 달인이었으며 친근한 이미지와 친화력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2006년 12월 호주 존 하워드 총리 주최 오찬 답사에서 노 대통령은 원고에도 없는 유머를 날렸다. 수입 확대 요구라는 딱딱한 통상 문제에 대해 "호주산 철광석이 한국에 수입되어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자동차들이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라며 유머 감각을 발휘해 부드럽게 전달한 것이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리트는 "대통령은 코미디언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위로와 웃음을 주기 위해 망가질 위험을 감수하는 대통령을 국민은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유머 작가를 비서관으로 채용해 연설에서 유머 경쟁을 한다.
링컨 대통령은 1860년 대선에서 경쟁자 스티븐 더글러스 의원이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요"라고 공격하자, "만약 내가 두 개의 얼굴이 있다면 하필 이런 중요한 자리에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라고 응수했다. 링컨 자신이 촌스러운 자신의 외모를 일종의 자기비하 농담으로 자신을 낮추며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는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한 청년의 저격을 받은 후 긴급 후송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때 간호사가 총 맞은 곳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몸에 여기저기 손을 대자 "내 아내에게 허락받았나요?"라고 말했고, 수술 집도 의사들에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공화당원이라고 말해주시오"라고 유머를 던져 극도의 긴장감을 웃음으로 녹여냈다. 이후 레이건의 지지율이 83%까지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유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치가는 바로 고 노회찬 전 의원이었다. 그분의 유머와 위트는 노회찬 어록으로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2004년 3월 KBS 심야 토론에서 노 전 의원은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져…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라며 구태 정치판에 촌철살인을 날려 국민들의 속을 펑 뚫어 놓았다.
날선 정치 공방 현장에서도 국민들은 총칼로 계몽하기보다는 유머와 해학으로 국민을 위로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정치가의 유머는 성숙한 자아와 이타성의 표현이며, 높은 지성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정치와 경제가 어려울수록 지도자의 유머와 해학은 국민들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서로 부딪힐 때 기름칠로 마찰을 줄여주고 안심을 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머 감각과 리더십을 갖춘 품격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길 기대한다./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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