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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대전보건대학교 총장 |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 시기에 유난히 '나무'를 떠올립니다. 언젠가부터 꽃보다 나무가 더 좋아졌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꽃을 좋아했습니다. 그 짧은 전성기 동안 온 마음을 다해 피어나는 모습, 눈길을 사로잡는 색과 모양, 무엇보다 주변의 관심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생명력이 부러웠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빨리 피고, 크게 피고, 남들이 보기에도 근사한 모습으로. 마치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해,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빛나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삶의 목적처럼 느껴지던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목표는 늘 '더 나은 나', '더 많이 가진 나', '더 빛나는 나'였고, 속도는 중요했고, 타인의 시선은 나침반이 됐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달리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조금씩 속도를 바꾸고, 하루하루가 조용히 쌓여가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저는 점점 나무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는 조용합니다.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신을 바꾸고, 햇살이 쏟아질 땐 그늘이 되어주고, 비바람이 몰아칠 땐 묵묵히 맞으며 그 자리를 지켜냅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는 자신만의 생명력. 그건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고요한 단단함입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자신만의 시간과 이유를 품은 존재들이 있다는 걸요.
나무가 좋아진 건 아마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보여질까'를 먼저 생각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아낼까'를 더 고민하게 됩니다. 성과보다는 지속을, 박수보다는 균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누구보다 빨리 가기보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오래 걷는 것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따금 '지금쯤은 뭔가를 이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봅니다. 가로수 위로 펼쳐진 잎의 그늘, 그 아래에서 발걸음을 늦추는 사람들, 서두르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쉼이 되어주는 나무의 모습에서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존재. 삶이란 그렇게 조용히 성숙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6월은 그런 성찰을 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상반기의 끝자락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무엇을 잘했고 무엇은 미루었는지, 지금 이 방향이 맞는지 조용히 묻기 좋은 시간입니다. 어릴 적엔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푸릇한 나뭇잎이 언젠가 색을 바꾸고, 낙엽이 쌓이고, 다시 또 싹이 나는 일. 삶도 계절처럼 반복되기에, 지금 이 순간이 반드시 지나가고 새로운 날이 오리라는 것. 그리고 어떤 계절이 오든, 그 안에 나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견디고,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저는 이제, 꽃보다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찬란함보다, 오래 머물며 마음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무 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혹시 당신도 요즘, 꽃보다 나무에 마음이 가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건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나무처럼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 당신, 그 자체로 참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꽃이 되기보다는 나무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도 나무처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세요.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이정화 대전보건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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