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물건을 벗고 나를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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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물건을 벗고 나를 입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5-06-01 10:54
  • 신문게재 2025-06-02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법원의 재판은 재판부마다 특정 요일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에는 일주일 중에 재판이 많이 있는 요일이 수요일과 목요일로 거의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이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오늘도 바쁘게 그 전날까지 준비했던 사건의 기록을 들고 법원으로 향한다. 10여 년이 되는 변호사 생활 동안 아마 수천수만 번의 재판에 들어가고 나오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재판은 긴장되는 순간임에는 틀림없다.

재판을 마치고 법원 정문을 나온다. 봄과 여름 사이, 일년 중 가장 좋은 날씨에 습도가 높지 않은 공기는 정말 쾌적하다. 지금 현재 이곳을 걸어가는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늘 해야 할 일과 통화해야 할 사람, 그리고 현재 막혀 있는 사건에 대한 고민…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깊숙한 곳에서 마음을 두드리는 질문 하나. 나는 왜 초라했는가.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과 자신감.

한때 물욕에 찌들어 있었다. 변호사 생활이란 상당히 고강도의 업무량과 난이도를 가진 편이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 수치가 상당히 높다. 서울에서 로펌에 근무할 적에는 일에 치여 살면서도 귀신같이 빈틈을 찾아내 어마어마하게 쇼핑을 했던 것 같다. 1년이 끝나고 연말정산을 하면서 연봉보다 높은 카드결제액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벌어 고스란히 물건으로 다 바꾸었다는 말이 아닌가!

사람인 이상 누구나 어느 정도는 물욕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추상적인 금전을 원하는 것도 물욕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물건을 원하는 것은 어린아이 때부터 많이 발견되는 평범한 일이다.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쇼핑홀릭도 심심치 않게 고백 되는 악덕이다. 일이 힘들고 시간에 쫓기면 쫓길수록 더욱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쇼핑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던 필자가 이제 물건은 물건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과거에는 대체 왜 그랬고 지금은 또 무엇이 달라졌나. 물건에 집착했던 것은, 물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 자신감이 없어서였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멋져 보이는 물건으로, 남들이 선망하는 물건으로 나를 가리고 장식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물욕은 허기, 배고픔 그 자체이기 때문에 결코 자신감을 획득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점점 더 갈증이 심해지듯 물건을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마음의 허기는 더 깊어져 말라 죽게 된다.

나는 미니멀리즘에 빠지면서 물욕으로부터는 벗어났으나, 한편으로 자신감의 문제는 여전했다. 자, 초라한 나를 꾸며주는 물건들을 다 내려놓고 벌거숭이의 나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하면 자신 있고 당당할 수 있는가?

봄이 끝나가는 상쾌한 날 재판을 다녀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멋진 옷도, 값비싼 보석도, 다 없어도 내가 당당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구나! 내게 온 의뢰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해주고, 내 양심을 다해 내 온 마음을 다해 일을 하면, 그래서 나라는 한 명의 변호사가 존재할 가치가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대해 더없이 당당할 수 있고 자신감이 저절로 넘쳐 흐르겠구나.

나 자신이 초라했던 것은 학벌이니 외모니 직업, 재산, 사회적 지위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꾸미고 좋아 보이려 하는 그 마음 때문에 초라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음이 초라한 사람이 자기를 꾸미려 하는 법이므로. 그러니 나를 멋져 보이려 하지 말고, 실제로 멋지게 살아가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건을 맡으려고 하지 않고, 이 사람의 일을 내가 잘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을 맡는다는 마음 자세의 전환. 그리고 증명되는 실력. 물건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를 초라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귀중한 하루였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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