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새로운 것, 변화를 원하지 않던가. 창출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거나 생각지 않아도 새로움에 대한 갈구, 갈망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런 욕구, 결핍에 대한 갈증이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그 변화는 긍정적이거나 발전적인 것이다. 더 나아지길 원하는 것이지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이중성이랄까, 우리는 서로 상반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한다. 안정과 변화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급진적이냐 안정적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으론 그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단지 탈 쓴 가짜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진위 분간이 어려운 실정이다.
예술도 다르지 않다. 예술은 지극히 주관적인데서 출발하여 객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의 산물이다. 예술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새로움 또는 다름을 만들고, 전파하는 것이다. 이로써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에 풍요를 안겨준다. 작가이면서 아무것도 건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이 하는 대로 흉내 내거나,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물론, 더 추구해야할 것, 심도 있게 탐구하거나 시험하는 것은 별개문제다. 상투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것은 지양해야한다는 의미다. 늘 자신의 고정관념과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이 작가정신이다.
한편, 자연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형상이다. 나름의 법과 질서로 존재한다. 자연계에서 볼 수 없는 창작의 세계가 예술이다. 작가는 체험과 이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상상력에 의존한다. 영감 또는 직관에 의한 전혀 새로운 것의 상상이 있는가 하면, 인식 또는 체험에 의존, 종합, 분해, 가감으로 이어지는 연상적 상상이 있다. 그를 통해 새롭게 창작하거나 완전하게 한다. 많은 성찰과정 및 절차가 담겨있다.
경험주의자들은 상상만이 본질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새로운 표현을 끌어내는 도구로 이성보다 영혼이 담긴 상상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성과 상호보완적인 의미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낭만주의에 이르러 이성을 배제한 주관성의 강조, 주관적 표현으로 독특한 감정과 표현이 중요시됐다. 주관은 직관과 영감을 통한 상상력에 의존하며, 그를 통해 이성으로 이루지 못한 실재의 발견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20세기 초현실주의 예술관의 중심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형식주의에서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유의 형상적 능력으로 보았다.
과학이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지적사유에 의존한다고 해왔지만, 영감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아주 낮은 비율의 영감이 전체에 비견됨을 주목해야한다. 다시 말해,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대부분이 상상력에 의존한다.
상상은 미답의 세상, 새로운 세상, 있었던 것, 있을 법한 것, 있어야 할 것 등에 관해 일어나는 생각이다. 남의 무관심 분야, 남다른 포장, 융합과 분리, 재구성도 포함된다.
상상력 향상을 위해, 그가 어떻게 작동되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중지능이론을 세운 하워드 가드너는 <열정과 기질>에서 창조적 거장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말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정치가 간디, 무용가 미사 그레이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시인 엘리엇,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이다.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 창조성을 보여주었다. 그들뿐이 아니다. 문예사조나 예술사는 물론,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변화를 주도한다. 왜냐하면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역사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미래는 상상하는 사람의 몫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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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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