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박물관에 다녀 왔다. 춘천 박물관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마침 서울의 시댁 식구들과 나들이 장소가 춘천으로 정해져서 춘천 박물관에 같이 가자고 해둔 터였다. 지방도시에 있는 박물관은 그 지역의 특색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 지역의 특색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박물관에는 볼만한 것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어서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재미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곳이다. 사실 집안 나들이 모임에 유독 박물관을 같이 가자고 한 데에는 상설 전시하고 있는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굴한 오백나한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령사 발굴 오백나한은 2001년에 317점이 발굴되었는데 보존과 연구를 거쳐 2018년 처음 춘천 박물관에서 전시가 이루어진 바 있었다. 그때 보도된 조각상들을 보고 단번에 이끌려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친 질감을 가진 화강석을 아주 투박하게 다듬은 나한상은 재료의 거칠음과 다듬은 방식의 투박함과는 다르게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섬세한 이미지와 강렬한 인상이 매우 대조적이어서 단번에 이끌려 들었던 것이다. 춘천까지 가는 직행 교통편이 그리 편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게으름 탓이기도 해서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전시 기간을 놓치고 말았었다. 그 이듬해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가 있었지만 역시 가보지 못하고 번잡한 일상에 휩싸이고 말아서 늘 아쉬웠는데 춘천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백나한상을 이토록 보고 싶었던 것은 물론 종교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오백나한이 어떤 종교적 존재인지에 대해서 당시에는 사실 잘 모르고 있었고 단순히 전시 포스터에 소개된 조각상들의 사진 이미지 하나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어서 종교적 감흥이나 신앙적 숭배의 대상으로 이끌려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이렇게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가진 재료를 이렇게 수수하게 다듬어 내서 정교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구현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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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상 (춘천박물관 제공) |
결국 춘천 박물관에 전시된 나한상들을 직접 마주하고 갖게 된 즐거움,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조각상들과 나는 초면이지만 그 만남을 반가움이나 즐거움이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데서 갖게 되는 고마움, 그리고 그 조형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고 아라한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수행 끝에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사찰에 가면 응진전이라는 곳에 오백나한을 봉안한 곳들을 여러 곳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이 조형적인 면에서는 감흥이나 감동이 있었던 곳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조금은 생경하고 어색한 느낌을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경험이다. 그런데 창령사 터에서 발굴한 오백나한상은 조형 그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포스터 사진을 보고 느낀 강렬한 이끌림은 종교적인 지식이나 신앙적 배경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조형이 주는 인상 그 자체만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칠음과 정교함의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칠다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표현방법이나 질감이 투박하여도 그 이미지는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반전의 미학이 들어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창령사 나한은 그런 점에서 그냥 거친 화강석 돌덩어리를 투닥 투닥 털어내어 만든 것 같지만 모두 표정과 몸짓이 다를 뿐 아니라 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섬세함이 보는 이를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이끌어 들인다. 이것은 투명한 피부가 느껴지고 옷의 주름이 흘러내릴 듯한 르네상스의 정교한 대리석 조각들과는 전혀 다른 미감을 보여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곰곰이 하게 되었다. 거친 화강석을 투박하게 다듬어서 저토록 선명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조형의 원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소박함, 꾸미지 않음, 진실함이 아닐까? 창령사 나한을 다듬는 석공의 마음으로 세상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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