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보통 고향이라면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고향에 대한 관념은 태어나서 오래 생활했던 곳일수록 짙다. 설령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도 자연스레 고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고향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에 얽힌 장소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추억, 애정, 그리움이 담긴 곳도 고향이라 한다. 즉 고향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정든 장소다. 비록 타향이지만 자신의 꿈을 꾸고 펼쳤던 곳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꾸렸던 곳도 고향이 될 수 있다. 어쨌든 고향에 대한 애착심과 그리움은 귀소(歸巢) 본능이자 본원적 정서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공동체라고 하는데, 범주와 기능에 따라 세계공동체, 국가공동체, 지역공동체로 나눠볼 수 있다. 이들 공동체는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세계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들 세 가지 정체성을 나름대로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과 여건에 따라 정체성 간의 관계는 때로는 친화적으로, 때로는 길항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영국이나 스웨덴의 경우 세 가지 정체성의 관계가 공존 적인 데 반해, 미국과 중국은 갈등적인 측면이 강하다. 국가주의와 지역주의 간의 관계에서 일본은 도쿄 중심의 관동지방과 교토 중심의 관서지방이 포용적인 데 비해, 한국은 영남과 호남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배타적이다.
한국은 영토가 협소하고 단일민족적 동질성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국가주의와 지역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이러한 현상은 불균형적 산업화과정, 적대와 배제의 정치문화 및 제도, 정치행위자들의 근시안적 행태 등이 맞물려 나온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지역민이든 출향인 이든 고향을 애틋하게 떠올리는 한가위를 앞두고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중앙 정계와 이재명 정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충청 출신 정치인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난달 금산 출신의 정청래 국회의원과 보령 출신의 장동혁 국회의원이 각각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되어 정치 전반을 이끌고 있다. 이 덕분으로 양당 지도부에 충청 출신인 이 적지 않게 포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일찌감치 실질적인 권력서열 2인자 인 대통령비서실장에 아산 출신의 강훈식 전 국회의원이 임명되면서 지역균형과 탕평인사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아마도 이처럼 충청 출신인 이 정치·행정 영역에서 중심이 된 경우는 김종필, 이해찬, 이완구 국무총리 이후 오랜만일 것이다. 다소 지나친 예단이지만, 충청 출신 정치인에게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마주한 것이 분명하다. 이에 이들의 선전을 기대하면서 몇 마디 당부를 덧붙이고자 한다.
정치지도자는 리더십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본래의 고귀하고 올바른 뜻을 이룰 수가 없다. 따라서 항상 진실, 용기, 관용, 통찰이라는 정치적 덕목을 디서플린(disciplin)하고, 시대정신을 포착하며, 정치력과 공감력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충청인의 심성과 기질에는 중용과 조화를 중시하고, 온화함과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 혹시나 기상이 열정적이고 준엄하더라도, 선공후사(先公後私)와 통합정치를 위해 겸허하고 사려 깊은 언행이 더욱 필요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인정미를 베푸는 것은 정치인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