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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견된 '빙고' 흔적./사진=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의 중심 산성이었던 부소산성에서 왕실 전용 냉장시설로 추정되는 '빙고(氷庫)'와 건축 의례용 '지진구(地鎭具)'를 처음 확인한 것이다.
13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연구소)는 부여군과 함께 부소산성 제18차 발굴조사 시작을 알리고 지난해 17차 조사에서 추가로 확인된 성과를 공개했다.
부소산성은 백마강 남쪽의 부소산을 감싸 쌓은 산성으로 사비 백제 시기 왕성을 방어하고 왕궁을 품은 핵심 유적이다. 사비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 북쪽에 자리하며, 1981년부터 현재까지 17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대형 건물터와 도로, 축대 등 백제 후기 도성의 구조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연구소는 지난 17차 조사에서 부소산성 내 가장 넓고 높은 평탄대지를 발굴해, 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으로 추정되는 대지조성층과 굴립주 건물지, 와적기단 건물지를 확인한 바 있다. 이후 정리 과정에서 빙고와 지진구가 추가로 발견됐는데, 이는 부소산성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다.
사비 백제 유적에서 빙고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가유산청은 2015년 부여 백마강변 구드래 일원과 서나성 일대를 발굴 조사해 백제 시대와 조선 시대의 빙고를 차례로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소산성 안에서 빙고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왕실의 권력과 생활을 함께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빙고는 얼음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특수시설로, 강력한 왕권과 국가적 조직력을 전제로 구축되는 고위 권력층의 상징적 시설이다.
이번에 확인된 빙고는 부소산성 동쪽 끝에 위치하며, 평면은 사각형, 내부 단면은 U자형이다. 규모는 동서 7m, 남북 8m, 깊이 2.5m로, 초기에는 암반을 그대로 벽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남벽을 돌로 축소한 흔적이 남았다. 바닥 중앙에는 물을 저장·배수하기 위한 집수정이 마련돼 있었다.
지진구는 건물을 세우기 전 땅속에 묻는 상징물로, 건축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에 사용됐다.
이번에 발견된 지진구로 사용된 항아리는 네모에 가까운 형태로 목이 짧고, 위에는 둥근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덮여 있다. 내부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 사용된 동전인 오수전(五銖錢) 5점이 출토됐다.
연구소는 "이번에 확인된 지진구는 대지조성층이 아닌 생토를 굴착해 조성되었고 주변에 건물은 빙고만이 확인되고 있어 빙고의 성공적인 축조를 기원하기 위해 봉안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번 18차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군용 식량창고였던 군창지 서쪽 지역을 조사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은 지난 17차 조사에서 확인된 건축물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백제 사비기 왕궁터의 구체적인 실체를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소는 "앞으로도 백제 역사의 진정성 있는 규명을 위한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며, 조사결과를 국민들에게 적극 공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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