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성난 피해자들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성난 피해자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 승인 2021-03-29 09:34
  • 수정 2021-03-29 09:37
  • 신문게재 2021-03-30 18면
  • 신성룡 기자신성룡 기자
2021020801000775300032921
박미랑 교수
얼마 전 온라인상에 '배우 OO는 학교폭력 가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순수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배우가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더욱 사건을 파헤쳐 보니 그의 동급생 괴롭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속됐다는 증언들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학교 폭력 ‘미투’(me too)가 연일 터지고 있다. 아이돌 가수는 물론, 연기자, 체육인들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 됐다. 지목되는 가해자의 연령대도 10대부터 40대까지 넓다. 연예인이 학교 폭력 미투의 대상이 된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단순히 폭로에 그치고 연예인이 자숙의 시간을 갖는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면 이젠 그 수준이 아니다.

20대의 남자 배우는 학교폭력 미투 이후 반강제적으로 활동을 접었지만 그를 향한 미투는 계속 새로운 피해자들의 등장으로 진행 중이다. 쌍둥이 운동선수들은 현재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건 물론, 향후 선수 생활 이후의 삶의 설계에도 타격을 받게 됐다.

최근 연예계와 체육계의 학교 폭력 미투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30년 전의 이야기를 폭로하고 있다. 피해자는 폭로하지만, 가해자가 형사적 처벌을 받을 수는 없는 오래된 사건들이다. 더욱이 가해자는 가해 당시 미성년자였고, 수사한다 한들 그 수년 전의 사건에 대한 증거를 찾기도 매우 어렵다. 단순히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하는 가해자도 있고,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가해자도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왜 미투 폭로를 하는 걸까?

잘 나가는 누군가를 시기 질투해서일까? 이유야 단순하지 않지만 정말 유치한 그 이유가 아님은 확실하다.

학교생활은 청소년 삶의 전부다. 한국처럼 대다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은 그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사건이 된다.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 문화가 큰 우리의 학교생활에서는 더욱 그 타격이 크다. 통상 미화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인생의 한 시기의 기억을 통째로 오려 내고 싶은 심정이 대부분이다.

이런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많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은 친구에 의해 상처받았지만, 친구를 갈구한다. 합의금의 규모가 반성이고 합의금이 피해 회복 노력의 증거로 해석되는 형사사건의 논리가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중요한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폭력 사건은 두려움에 묻히고, 드러난 학교폭력 가해자는 교내 학폭위와 민·형사사건의 다툼의 장이 된다. 누가 더 큰 손해를 입고 끝나느냐의 싸움이 된다. 처벌받는 누군가가 공표되고서야 종결된다. 그리고 이 싸움엔 사과도 회복도 없다.

학교폭력을 단순히 처벌의 논리와 형사사건의 논리로 접근하면 사과받지 못한 성난 피해자들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뻔뻔한 가해자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처벌단계까지 거친 많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이미 처벌받았다", "합의금을 전달했다"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곧 대중의 분노를 사고 대중은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한다. 이것은 그들이 처벌을 덜 받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우리의 현행 형사사법 체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형사사법 체계는 처벌을 격리를 통해 해결한다. 가해자에게 자신이 했던 행동을 절실하게 반성하는 것을 처벌이라 보지 않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처벌이라고 보지 않는다. 형사사법 체계가 시키는 대로 피해자와 상관없이 격리되고 교육받으면 처벌이 종료된다.

성난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해 폭로를 하고 있지만, 그 분노의 대상이 꼭 가해자만을 향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들의 성난 미투는 피해자의 회복을 외면한 우리의 형사사법 체계를 조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벌로 모든 것이 종료되는 이 형사사법 체계의 부작용, 모두의 회복이 중요한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정신에서 그 해결점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사망 20일 뒤 발견된 모자 왜?…사회 단절된 채 수개월 생활고
  2. 대전교육청 리박스쿨 이어 이번엔 극우 교원단체 '대한교조' 홍보 배정 논란
  3. 저스티스 유한 법무법인 첫 전환…전문성·법률서비스 강화
  4.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 외국인 관광객 유치 특례 추가
  5. 의대생 전원 돌아온다지만... 지역 의대 학사운영·형평성 논란 등 과제
  1. 유성선병원 대강당의 공연장 활용 의료계 의견 분분…"지역 밀착형vs감염병 취약"
  2. ‘민생회복지원금 21일부터 사용 가능합니다’
  3. 전재수 "해수부, 세종보다 부산이 더 효과" 발언에 충청권 '발끈'
  4. 대전.충남 행정통합 결실 위해선 초당적 협력 시급
  5. 지질자원연 탐해3호 서태평양 출항, 해저 희토류 정밀 탐사 시작

헤드라인 뉴스


정부세종청사 첫 국무회의 언제?…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정부세종청사 첫 국무회의 언제?…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오는 8월 청와대의 대국민 개방 종료와 함께 이재명 새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새 정부 로드맵에 따라 7월 말 일단 문을 닫는다. 2022년 5월 첫 개방 이후 약 3년 만의 폐쇄 수순이다. 빠르면 9월경 종합 보안 안전과 시설물 등의 점검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실의 심장부로 다시 거듭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정 운영을 시작할 시점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다시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중앙권력의 중심부로 돌아오는 과정이나 우려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수도권 초집중·과밀을 되레 가속..

이번엔 스포츠다!… 대전시 `스포츠 꿈돌이` 첫 공개
이번엔 스포츠다!… 대전시 '스포츠 꿈돌이' 첫 공개

대전시가 지역 대학생들과 협업해 새롭게 탄생시킨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15일 대전시에 따르면 오는 17일까지 대전시청 1층 로비에서 '2025 꿈씨패밀리 스포츠디자인 산학협력 프로젝트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전시 대표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꿈씨패밀리'를 스포츠 테마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한남대학교 융합디자인학과와 목원대학교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재학생 38명이 참여해 지난 한 학기 동안 완성한 결과물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전시장에는 캐릭터별 등신대, 티셔츠·선캡 등 굿즈, 그리..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임송자 화백… 특별상 김은희, 정의철 작가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임송자 화백… 특별상 김은희, 정의철 작가

충청을 대표하는 미술상인 제23회 이동훈 미술상 본상 수상자로 임송자 화백이 선정됐다. 이동훈기념사업회는 15일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제23회 이동훈미술상 수상 작가 심사 결과, 본상에 임송자 화백, 특별상에 김은희, 정의철 작가를 각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동훈 미술상은 대전·충청 미술의 토대를 다진 고 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고자 2003년 제정됐다. 대전시와 이동훈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며, 중도일보와 대전시립미술관이 주관한다. 본상은 한국 근·현대미술에 큰 업적을 남긴 원로 작가에게, 특별상은 대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 작가전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 작가전

  •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 첫 공개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 첫 공개

  •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충청 새 미래 열린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충청 새 미래 열린다

  • 요란한 장맛비 요란한 장맛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