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는 길

  • 정치/행정
  • 대전

[월요논단]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는 길

▲맹수석 충남대 법학연구소장

  • 승인 2019-07-14 21:19
  • 신문게재 2019-07-15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맹수석 충남대 법학연구소장
주말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장면이 하나 있다.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강화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실무진회의의 장면이다. 일본 관리 두 명은 집기를 쌓아놓은 창고 같은 공간에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는 종이 한 장을 붙여놓고 갑의 자세로 앉아 우리 실무진을 대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자존심 상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을까.

필자에게는 '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순사'와 '한일전'이다. 일본의 수탈과 압제에 시달리던 우리 부모들은 우는 아이에게 '저기 순사가 온다'라고 하며 울음을 멈추게 했었고, 그 말을 들으며 자라온 우리 세대의 머릿속에 일본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돼 있다.

연장선상이랄까. 초등학교 다닐 무렵 한일전 축구경기가 열리면 삼촌과 함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듣거나, 면소재지 전파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동네 사람들과 조그마한 흑백텔레비전으로 펼쳐지는 장면에 가슴조리며 응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페어플레이 정신이 적용되어야 할 운동경기에 있어서까지 어린 마음에도 일본은 반드시 이겨야 할 숙적(宿敵)으로 여겼던 것 같다.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가당치 않은 논리의 침략 전쟁이었던 임진왜란도 모자라, 무자비한 정한론(征韓論)의 기치 아래 1910년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고 35년간 혹독한 식민 통치를 자행했던 일본의 만행은 오랜 세월 우리 가슴에 울분을 쌓이게 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를 우리나라의 일본 제품에 대한 수출입 관리 부실 등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심의 이유는 우리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북·미 관계에서 '재팬 패싱'으로 일컬어지는 소외 국면을 모면하고, 나아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우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속셈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억지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정체불명의 가짜뉴스는 물론, 일부 정치인이나 굴지의 국내 언론사가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인양 언급함으로써 일본 우익에 빌미를 주고 있다니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경시청 발표 자료를 근거로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일부 원료를 오히려 일본이 제3국에 밀수출했다는 우리나라 야당 국회의원의 발표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태도는 적반하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만한데도 말이다.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권리가 철저히 배제된 국가간 협정이라는 비판도 있어 왔고, 더 나아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한 지난 정부의 '사법농단'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의식이 불씨가 되어 오늘의 파국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도 자성해 봐야 한다.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인정을 이유로 경제적 보복조치를 취하는 일본의 행태를 보면서, 그동안 가해자로서 진정한 반성이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 얼마나 안이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재벌 대기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으며 굴지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해 왔지만, 경영합리화나 기술개발에 지나치게 인색했다는 평가를 항상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기회에 대기업들도 핵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투자를 과감히 확대하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통한 기술자립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극일의 길은 정부와 온 국민이 '인권'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냉정하고 담대히 대응하고, 이제부터라도 기술독립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놓고 정부의 대처 능력에 대한 질타도 이어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산업 일선에서 뛰고 있는 우리 대기업의 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반일'을 넘어 제대로 된 '극일'을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인내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농촌 미래세대 캠프, 농업의 가치 재발견 기회
  2. 대전도시과학고, 대전 첫 학교 협동조합 설립 노크
  3. 유성고 50주년, 미래로 도약하는 축제의 장 연다
  4. 이은학 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참여
  5. '한우법 통과'로 새 시대...한우협회 환영 성명
  1. 배드민턴화, 기능과 착용감서 제품별 차이 뚜렷
  2. 약국 찾아가 고성과 욕설 난동 '여전'…"가중처벌 약사폭력방지법 시행 덜 알려져"
  3. [인터뷰] 송호석 금강환경청장 "대청호 지속가능 관리방안 찾고, 지역협력으로 수해 예방"
  4. 충남대 동문 교수들 "이진숙 실천형 리더십… 교육개혁 적임자"
  5. 설동호 대전교육감 새 특수학교 신설 추진할까 "적극 검토"

헤드라인 뉴스


대전 온 李대통령 "대전, 前정부 R&D 예산 삭감에 폭격"

대전 온 李대통령 "대전, 前정부 R&D 예산 삭감에 폭격"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민소통 행보, 충청의 마음을 듣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타운홀미팅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박정희 시대에는 성장을 위해 결국 한 쪽으로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고도성장기에는 성장을 위한 자원 배분이 한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거의 특권 계급화된 사람들이 생겼다. 이제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균형발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재벌이라고 하는 대기업 군단으로 부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요즘 대전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초등생이 있다. 청아하고 구성진 트로트 메들리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대전의 트로트 신동 김태웅(10·대전 석교초 4) 군이다. 김 군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2년 전 'KBS 전국노래자랑 대전 동구 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김 군은 '님이어'라는 노래로 인기상을 받으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중파 TV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 군은 이후 케이블 예능 프로 '신동 가요제'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군은 이 무대에서 '엄마꽃'이라는 노래를 애절하게 불러 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이재명 대통령, ‘충청의 마음을 듣다’ 이재명 대통령, ‘충청의 마음을 듣다’

  •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