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세밑 단상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세밑 단상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12-29 09:19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 번째 별에서 만난 술주정뱅이에게 어린 왕자는 묻는다. 왜 술을 마시느냐고. 그는 대답한다. 잊기 위함이라고. 어린 왕자는 다시 묻는다. 무엇을 잊으려고 마시느냐고. 그는 다시 대답한다.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 먹는 것이 부끄러워 이를 잊으려고 마신다고. 동화 어린 왕자 속 한 토막이다.

술로 어떻게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을까? 술로 없어질 부끄러움이라면 애당초 부끄러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술주정뱅이의 태도는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한 꺼풀 더 들어가 보자. 그는 적어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잊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염치가 있고,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2019년 한 해, 우리 사회를 광풍으로 몰아간 주제어는 양심이고, 염치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범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를 가리기 위한 뻔뻔함에 우리는 분노하였고, 속 훤히 보이는 교언에 이 사회는 튼튼한 사회일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접고 좌절하였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진영 대 진영의 주장만을 논리로 포장해서, 그것도 지식인들이, 마구마구 쏟아낼 때 공동체적 가치는 정녕 종언을 고하였다.

그러나 거울을 남이 아닌 나를 향하여, 저 잘났다는 권력자나 지식인이 아닌 우리를 향하여 들어보자. 나는 어땠고, 또 우리는 어땠는가? 부끄러움에 술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나마 나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마셔야겠다고 말이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뻔뻔함이, 결론을 내리고 논리를 꿰맞추는 자세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몇몇 유명인사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음에 이 겨울이 우울하다. 내 행태가, 겉모습은 청솔가지에 내린 새하얀 눈송이건만, 속 모습은 흙탕물에 녹아가는 검은 눈 쓰레기 같다는 느낌에 진짜 모습을 잃은 듯하여 찬 바람 날리는 빈 나뭇가지처럼 참 헛헛하다.



세밑 중의 세밑이다. 이 계절에 부끄러움을 잊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술주정뱅이만도 못한 존재이다. 부끄럼 많았던 올 한 해를 건너기 전 자문하면서 씻고 가자. 타인을 향해 분노하고 조소하기에 앞서 나를 향한 거울을 들어보자. 비록 그 부끄러움 없어지지 않고 내년 한 해 또다시 잘못 범하겠지만, 마지막 며칠을 그렇게라도 보내면서 2020년 새해를 맞이해보자.

2019년, 중도일보도 충청의 공기(公器)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온 한 해였다. 날로 열악해져 가는 취재 환경 속에서도 기자들은 한 줄의 진실을 전하기 위하여 발품을 아끼지 않은 채 허허벌판의 청정한 소나무 기상으로 붓을 꺾지 않았다. 좀 더 나은 지역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필진도 정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부족함이 없겠고,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이 부끄러움 잊고 더 나은 중도일보가 되어 독자 여러분께 나아가기를, 우리 모두 송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마음 판에 맹세하는 중도 가족이 되어보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재명, '수도권 몰빵 폐해' 종식 선언...세종시 밑그림은
  2. [대선 D-3] 이재명 충청서 주말 총력전 역대선거 '캐스팅 보터'지역 방문
  3. 세계평화여성연합 천안시지부, 천안 마틴공원서 호국보훈의 달 기념 봉사활동 실시
  4. 천안법원, 장애인주차표지 위조·행사한 50대 남성 '징역형'
  5. 천안법원, 월세 피해의식에 불 지르려 한 60대 남성 '징역 1년 6월'
  1. 현대건설, 천안지역 폭염 취약가구 위해 후원금 기탁
  2. 천안시 서북구보건소, K-컬처박람회 '안심 방역' 총력
  3. 한기대, 창업 선배가 후배들에 전하는 '진솔 멘토링' 호응
  4. 창원시, 버스파업 3일차 호소문 발표
  5. 이재명 대전연설 '성남FC의혹은 인민재판 이러니 공무원들이 일을 안해'

헤드라인 뉴스


21대 대선 하루 앞… 소중한 한 표 충청의 선택은 누구에게?

21대 대선 하루 앞… 소중한 한 표 충청의 선택은 누구에게?

대전·충청은 물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할 21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궐위 선거로, 4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동시에 열린 초단기 대선 레이스가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졌다. 60일의 짧은 기간 동안 각 정당과 후보들은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전통적 캐스팅보터 지역이자, 역대 선거마다 승패를 결정지은 금강벨트 표심을 초반부터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 결과, 충청의 숙원인 행정수도 완성을 비롯한 첨단산업벨트 구축과 주요 공공기관 이전,..

대선 후보들 과학수도 대전 약속했다
대선 후보들 과학수도 대전 약속했다

6월 3일, 21대 대통령 선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충청 발전을 위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후보들은 물론 국민 대통합과 국가균형발전, 미래산업 발전을 위한 공약은 물론 충청지역 발전을 위한 공약도 쏟아냈다. 유권자들은 연설이나 퍼포먼스를 잘하는 후보도 좋지만, 공약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행할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충청에 도움이 된다. 중도일보는 충청인들의 선택을 돕고자 제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제시한 충청권 4개 시도 주요 공약을 분석했다. <편집자..

식품·외식 물가 껑충에 서민 부담 늘어간다
식품·외식 물가 껑충에 서민 부담 늘어간다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가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물가가 오른 데는 식품기업과 외식업계 등의 가격 인상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급격한 물가 상승에 당분간 서민들의 부담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일 업계에 따르면 2024년 정부의 압박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던 식품업체들은 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의 혼란기에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가격 인상 사례는 지난 1월과 2월에 이어 3월 이후 부쩍 늘었고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동서식품은 대선 나흘 전인 전날 국내 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21대 대선 개표 준비 ‘꼼꼼하게’ 제21대 대선 개표 준비 ‘꼼꼼하게’

  • ‘미리 참배왔어요’ ‘미리 참배왔어요’

  • 사전투표함 보관 ‘24시간 철저하게’ 사전투표함 보관 ‘24시간 철저하게’

  • 사전투표 행렬 사전투표 행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