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그러나 이러한 법적 의미에서의 의사무능력자와는 달리 사회 각 조직의 영역, 특히 정치 영역에서 냉소적, 체념적으로 회자되는 용어로 '결정 무능력자'라는 단어가 곧잘 사용되고 있다. 이는 조직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결정을 할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리더를 칭하는 용어이다. 조직은, 그 조직이 크든 작든 관계없이 순간순간 조직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사실 당해 조직에 속한 모든 자들은 바로 이러한 조직의 의사결정을 위한 과정에 참여하기에,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될 수 있지만, 특히 정치영역에서의 리더에게는 이 결정 능력이 더욱 중시된다.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최선의 결정을 할 능력이야말로 정치 지도자의 최고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조직체의 리더들이 최고의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아니 실상 필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본인이 결정할 것을 타인이 한 것으로 치장하는 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리더의 행동양식의 특징은 조직의 다양성과는 상관없이 너무나 흡사하다.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책임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하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결정을 질질 끈다. 그리고 더 이상 끌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구성원의 의사를 묻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는 이를 민주적인 리더로, 조직원의 의사를 존중하는 소통으로 치장한다. 그 결정의 결과가 다행히 좋은 결론으로 이어지면 이는 당연히 본인의 공이자 능력의 산물이다. 만일 결과가 나쁘면? 이들이 둘러대는 대답이 꼭 오래된 녹음기 튼 것처럼 되풀이 되어 흘러나온다.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부하 직원들이 한 것이라고,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이런 리더가 책임을 맡고 있는 조직의 미래는 불문가지이다. 참모와 부하 직원들은 더 이상 리더를 신뢰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일만을 형식적으로 수행할 뿐이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추진해서는 안 될 이유, 성공할 수 없는 근거 찾기에만 골몰한다. 여기에 조직의 발전이, 구성원의 만족이 발 디딜 틈은 없다. 그리고 그 조직은 서서히 죽어간다. 구성원과 함께….
이런 리더가 바로 결정 무능력형 리더이다. 이들은 자신이 한 결정의 결과가 가져올 책임만을 무서워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중차대한 의사를 결정할 의지와 능력이 없음에도 그 자리에 앉아서 조직을 죽이는 자들일 뿐이다. 리더는 결정하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임에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결코 법률상의 의사무능력자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두뇌 회전이 빨리 돌아가는 우수 인재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쩌랴. 이들은 결코 의사무능력자는 아니지만 결정 무능력자인 것을….그러기에 이들은 의사무능력자와 같은 보호대상자가 아니라 일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처신하는 조직의 파괴자일 것을….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 지도자라고 여기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고, 지도자가 되기를 욕심내는 자들은 더 더욱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욕심 품기 전에 냉철히 되물어 보아야 한다. '내가 결정 무능력자는 아닌지, 혹 그 결정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은 아닌지?'
올해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를 일궈갈 일꾼을 뽑는 중요한 해이다. 결정 무능력자가 아니라 결정 능력이 뛰어난, 그래서 우리 지역사회를 한층 발전시키고, 시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올바른 결정 능력'을 갖춘 진정한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겨울 찬바람 이겨낼 새해 소망으로 걸어둔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