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배우고 베풀기, 변호사 정교순

  • 사회/교육
  • 교육/시험

[중도시평] 배우고 베풀기, 변호사 정교순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8-08-21 08:02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역지사지의 빛나는 규범을 대부분 알고 있으나 실행하는 이는 드물다. 하물며 상대방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문제를 바라보기란 보통 사람의 깜냥을 벗어난다. 2012년 11월 12일 저녁, 정교순은 대전 교도소에 입감되었다. 옷과 휴대품 일체를 영치품으로 압수당했다. 죄수복과 컵라면이 제공되었다. 식기를 받아 독거실에 들어가자 문 밖에서 교도관이 자물쇠를 채웠다. 소리가 컸다. 독거실 밖으로 바깥바람이 드나드는 아주 작은 창문 하나, 복도 방향에 밥이 들어오는 밥 알 크기의 출입구가 있었다. 그 날 서울에 첫 눈이 왔고 대전엔 비가 내렸다. 최저 기온은 3.1도, 전 날에 비해 4도가 떨어졌다. 온기 없는 방에 내복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몸이 추웠다.

검사를 할 때나 변호사를 하는 동안, 정교순은 늘 교도소 밖에서 감옥 안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담장 안에서 절박하게 바라보는 창살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대전지방변호사회 회장을 할 때, 대전 교도소의 도움을 얻어 하룻밤 이틀 동안의 수감 체험을 했다. 동료 변호사도 참여했다. 입감 체험은 교도관조차 허락받기 어려운 일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회 프로그램 덕분에 교도소장과 과장 한 사람도 독거실 수감의 귀한 경험을 얻었다. 14년차 변호사 정교순이 수감자의 눈으로 물리적 감옥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평 남짓한 독거실에 갇힌 그 날,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이 아리고 시렸다.

정교순 변호사를 법조의 길로 이끈 것은 부친이었다. 운동을 잘해서 축구에 푹 빠져 놀던, 어쩌면 연기 출신 프로축구 선수가 될 뻔했던 그는 부친 손에 이끌려 대전 선화초등학교에 전학했다. "축구 선수 대신 법조인이 되자". 오십년 전, 아들의 자질을 알아챈 부친의 선명한 길잡이였다. 한국 프로축구가 출범하던 1983년, 정교순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천재적인 창의성보다 농업적 근면성의 가치를 깨우쳐 준 부친은 그의 사시 합격 소식을 들은 뒤 영면에 들었다.

정교순은 대구지검 검사로 첫발을 디뎠다. 공주와 의정부지청을 거쳐 서울과 대전지검, 대전고검에서 근무했다. 서울지검 시절 교수채용 비리, 늙고 병든 소에게 물을 먹여 판매한 일당, 억대 주부도박단 등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이름이 언론에 자주 회자되었다. 서울지검 공판부 경력을 가진 그는 형사 특수부 검사로 출중한 실력을 발휘했다. 2000년대 초반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꾸려졌을 때 대전의 변호사 정교순은 특별검사보로 추천을 받았다. 지역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일은 드물었다. 서울의 전국 일간지가 한국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변호사 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지목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정교순이 변호사가 된 지 스무 해가 되었다.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그가 다짐한 원칙이 있었다. 사무장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필수적인 서류를 직접 작성한다, 교도소 수감자를 자주 찾아간다, 안 될 일을 가능하다고 거짓말 하지 않는다, 변호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건을 변호한다는 다섯 개다. 강산과 우주가 변한다는 시간 동안, 그는 변호사로서 스스로 설정한 원칙을 지켜왔다. 뿐더러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일들을 기꺼이 맡았다. 철도박물관을 대전에 유치하자는 일, 지역의 선거구를 증설하자는 일, 대전사랑시민협의회 등과 같은 일이다. 자신의 시간을 깨알의 반쪽처럼 쪼개 써야 할, 열심히 일해도 표가 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일상에서 숱하게 나누며 베푸는 정교순 변호사의 힘은 끊임없이 읽고 질문하고 배우는 삶의 방식에서 솟아난다. 변호사회장에 취임할 때 그는 선생을 구해서 컴퓨터의 원리와 화법을 사사했다. 주류와 소수 문화의 원천과 맥락을 공들여 배운다. 그의 말대로 변호사는 지역사회를 이끄는 대표적인 지성인이다. '배워서 남 주자' 청년 변호사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법조를 보는 시민의 인식 수준이 높아진 시대, 지역의 전국 변호사 정교순에게 배우는 귀한 가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아산시 어의정로 교차점 광장 준공
  3. 교육행정 몰리고 시설직은 주춤…교육청 공채 경쟁률 '온도차'
  4.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5.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1.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2.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3.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4.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5.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헤드라인 뉴스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에 나설 것이 유력해지면서 충청권은 곁다리 투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청권의 경우 두 기업이 막대한 고용창출 등이 기대되는 대규모 생산 라인이 아닌 AI데이터센터 건립으로 기우는 모양새인데 이럴 경우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시총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업체인 두 기업이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려면 충청권에도 생색내기 용이 아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정치권과..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이 2030년 하반기로 지연된다고 대전시가 공식 인정했다. 당초 2028년 개통보다 2년여가 더 늦어지는 것으로, 주요 공정 리스크와 차량 시운전 계획 반영 등을 이유로 꼽았다. 유득원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23일 대전시청 기자회견장에서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관련 브리핑을 갖고 "향후 통합공정 계획 수립을 통해 개통 일정 등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면서 개통 지연을 공식화 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은 총연장 38.8㎞, 정거장 45곳, 차량기지 1곳 규모로, 2024년 12월 착공해 현재 본선 14개 전..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