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용두동 더하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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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용두동 더하기 15

  • 승인 2019-10-30 10:06
  • 신문게재 2019-10-31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할머니
내가 사는 용두동엔 유난히 내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2005년 이 동네로 이사온 후 출퇴근길에 매일 본다. 이곳 용두동엔 아주 오래된 5층짜리 연립주택 단지가 있었는데 2000년대 초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새 아파트가 들어서 삐까번쩍한 동네로 탈바꿈했다.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은 소수일 뿐 대개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거나 용두시장 주변에 다시 눌러앉았다.

김덕례(80대·가명) 할머니는 용두동 토박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연탄가게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연탄만으론 수입이 시원치 않아 쌀가게도 겸했다. 그러다 재개발로 당장 이사를 해야 했다. 할머니도 시장 근처에 집을 사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땅을 딛고 사는 주택에 대한 열망이 있다. 덕례 할머니 집이 그런 곳이었다. 누추한 집이었지만 온기가 흘렀다. 대문이 열려 있는 집 안 마루엔 늘 동네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 벽돌 담장 위 나란히 놓인 선인장 화분은 여름이면 탐스런 노란 꽃이 만발했다. 대문 밖 고무 화분에도 상추, 부추, 가지가 싱싱하게 자라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덕례 할머니 집이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집 안팎으로 종이 박스 등 온갖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 갔다. 왜 이렇게 됐을까.

2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덕례 할머니는 박스 줍는 할머니가 됐다. 할머니는 한달에 6만원 정도 되는 수입과 정부에서 나오는 10만원으로 산다. 15년전 중풍으로 한쪽 팔, 다리가 성치 않아 박스 줍는 일이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자식들이 있지만 보태줄 형편이 안된다고 했다. 마루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냄비, 라면 봉지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걸로 봐서 끼니도 대충 때우는 모양이었다. 내가 부엌 문을 열려 하자 할머니가 창피하다며 말렸다. 할머니는 허기졌는지 내가 사간 과자를 맛있게 드셨다. "빌라 같은 데 가면 먹을 만한 음식들이 버려져 있어. 언젠간 쌀 한 봉지도 주워왔지. 가끔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갖다 주곤 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모은 돈이 조금 있지만 그걸 쓸 수 없다. 할아버지가 먹지도, 입지도 않고 모은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울어. 할아버지 불쌍해서. 몇 푼 안돼. 나 병들면 그때 써야지. 자식들한테 손 벌릴 순 없잖여." 전엔 방 한 칸을 세 놨는데 집이 허름해 지금은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덕례 할머니의 집도 할머니처럼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길을 가다 박스 줍는 노인들을 흔하게 본다.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들과 마주치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평소,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그게 뭔 대수냐고 큰소리 뻥뻥 치지만 노인들을 보면 내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6%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자살률도 1위다. 가난은 병든 몸과 외로움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우리나라는 노후소득보장체계가 낙후돼 65세 이상 노인의 공적 연금수급률이 32%에 불과하다. 청년 실업률도 높아 이들에게 부양받는 건 꿈도 못 꾼다.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는 서울의 한 빈민가족을 대상으로 사회구조가 어떻게 가난을 불러오는지를 기록한 르포르타주다. 작가의 관심은 빈곤의 세대 재생산이었다. 1986년부터 25년동안 가족 3대의 삶을 지켜본 결과 빈곤 재생산의 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가난은 찌든 때처럼 그들 삶 깊숙이 박혀 있었다. 가난의 대물림이었다. 부의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사당동 빈민 가족이나 덕례 할머니의 삶은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빈곤의 결과였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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