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역사는 반복된다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역사는 반복된다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

양동길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10-0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좋은 일만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왜 이리 지리멸렬하고 어리석었을까? 무모한 일을 벌였을까?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경악하거나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일이 현재에도 버젓이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서양 격언,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투키디데스(Thucydides, 생몰 미상, 그리스 역사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자) 말을 되새기게 된다.

조선 시대 각종 시험이 많았다. 시험하면 누구나 과거(科擧)가 떠오를 것이다. 문과, 무과, 잡과(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 등이 있었다. 고려 시대 실시되었던 승과는 폐지하였다. 인원이나 과정 등 시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3년마다 정기적으로 선발하는 식년시, 경사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명명된 수시 시험이 있었다. 문과의 경우 예비고사라 할 초시, 복시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주었다. 선발된 사람은 생원, 진사라 칭했으며, 문신 선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대과라 했는데, 대과 역시 두 번 치렀다.

세습되거나 시와 문장 유세로 등용되던 이전 시대에 견주어, 나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재 선발 방식이었다. 초기엔 상당히 엄정을 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느 분야와 다름없이 제도, 구조, 방법 등이 문란해진다. 각종 부정행위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급기야 과거제도 자체가 폐지된다. 958년(고려 광종 9년) 시작되어 무려 936년 동안 인재 등용의 산실이었다.

부정행위, 평생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정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하는 노골적 부정이 못마땅해 시험을 포기한 일도 있다. 붓대나 콧구멍, 속옷에 요약본 숨겨가기 등 엿보고 쓰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미리 문제지 빼내 알려준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거짓과 기만, 기상천외한 술수가 이슈로 등장하여 갑론을박 중이다. 법이 문제가 아니다. 고금이 다르지 않아, 전하는 기록물이 많다. 답안지 미리 만들어가기, 시험지 바꿔치기, 결탁하여 채점자가 후한 점수 주거나 합격자 이름 바꾸기, 다른 사람 글을 복제하거나 대작과 대필 하기 등 수법이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담장 밖에서 과장 안과 대나무 통으로 문제와 답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정조실록 24년 기록에는 과거 지원자가 많아 문과 무과 각 3곳에 과장을 설치하였다.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특별히 열리는 정시(庭試)였다. 3월 21일과 22일 이틀간 참여한 응시자 수가 무려 21만 5417명이었다 한다. 지금으로 쳐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나 당시 한양 인구 20 ~ 30만으로 추산할 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과거시험에 매달렸을까? 과거시험 통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최대의 효이자 충이며, 거의 출세의 시작이요 가문의 최대 영광이었다. 문과의 경우 3년에 보통 33명 선발했으니 실로 맹구우목(盲龜遇木)이었다. 나라에 문과 자리는 통틀어 500여 개에 지나지 않아 합격한다 해도 벼슬길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등용문은 좁고 인재는 넘쳐, 당파싸움 근원이 예에 있다는 견해가 있을 정도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 응시에 당일 발표하는 결과가 어찌 정상적으로 평가되겠는가? 남보다 빠르게 시험문제를 보고 신속하게 답안을 제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생각했다. 과장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전날부터 진 치고 있었다. 자리다툼이 치열하여 재빠르게 뛰어 들어가 일산을 피고 등을 밝혔다. 신속한 답안 작성도 필수였다. 당연히 여러 사람이 동원되었다. 과거 보는 당사자는 물론, 자리 잡아주는 선접(先接), 대신 답안 작성하는 거벽(巨擘), 대필해주는 사수(寫手), 심부름하는 노비 등 6명 이상이 한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작 당사자는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자리 차지하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김홍도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 김홍도, 비단에 수묵담채, 37.5㎝ × 71.5㎝
이런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그림이 김홍도 필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이다. 봄날 과거 시험장 새벽 풍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윗단 내용의 한팀이 그림 중하단에 온전하게 묘사되어 있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 제발이 내용을 잘 설명해 준다. 경주대학교 정병모 교수가 해석한 글을 옮겨보자.

"봄날 새벽의 과거시험장,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치르는 열기가 무르익어,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이는 책을 펴서 살펴보며, 어떤 이는 종이를 펼쳐 붓을 휘두르며, 어떤 이는 서로 만나 짝하여 얘기하며, 어떤 이는 행담(行擔)에 기대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등촉은 휘황하고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다. 모사(模寫)의 오묘함이 하늘의 조화를 빼앗는 듯하니, 반평생 넘게 이러한 곤란함을 겪어본 자가 이 그림을 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질 것이다. 강세황.(貢院春曉萬蟻戰, 或有停毫凝思者, 或有開卷考閱者, 或有展紙下筆者, 或有相逢偶語者, 或有倚擔困睡者, 燈燭熒煌人聲搖搖, 摸寫之妙可奪天造, 半生飽經此困者, 對此不覺幽酸. 豹菴)"

오늘날 시각으로 보아도 구도나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김홍도가 풍속화 전성기인 30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미 해군 Gene J. Kuhn이 1953년 그림을 사서 가지고 가 소장하였다. 다시 Patrick Patterson씨가 구입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울옥션이 구입 환수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그림이 곧 역사이기도 하다. 이참에 그릇된 일은 반복되지 않기를, 참다운 과거와의 대화로 역사가 미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2020092501002056400078142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두고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2. 대전 여야,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놓고 '공방전'
  3. 대전교도소·대전의사회 협력,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4. 90년 역사 품은 테미오래,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5. 32사단, 대둔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착수
  1.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2. [세상보기] 각자도생의 시대
  3. 대전 서구 '구청장 직통문자' 100일…민원 999건 접수
  4. 탈석탄 충남, 신재생 전환 이익 절반은 역외로
  5. '대학생이 제안한 위성을 우주로'…항우연 경연대회 7개 팀 선정

헤드라인 뉴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가 전국 교정시설 중 처음으로 스마트 메디컬센터를 구축하고 대전시의사회와 협력해 수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안과와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과에 대한 시설 내 전문진료를 시작한다. 2005년 교정시설의 원격진료가 허용된 이후 수용자 의료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도전으로 여겨져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는 22일 유성구에 위치한 대전교도소에서 스마트 메디컬센터 개소식을 갖고 새롭게 조성하고 확보한 시설과 장비를 소개했다. 이날 법무부 교정본부 권창모 의료과장과 이동철 의료 교정관이 참석하고,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주관으로 임정혁..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시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시설 직원이 구속 송치됐다. 경찰이 초기 수사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하며 재수사 돌입한 지 5개월 만이다. 세종경찰청 강력마약범죄수사대는 시설 직원 A(30대) 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3일 대전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5월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시설 내 목격자 진술과 A 씨의 근무 시간 등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확보하고 지난 7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A 씨에게 무혐의 처분..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대전과 세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이 797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한국어학급은 한 곳도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과 충북이 각각 한국어학급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전·세종은 고교 단계의 한국어 교육 기반이 부족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전지역 고교 이주배경학생은 655명, 세종은 142명으로 집계됐다. 두 지역의 학생 수를 합하면 797명이지만, 고등학교 한국어학급은 모두 운영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