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유사과학과 올바른 지식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유사과학과 올바른 지식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0-10-22 16:39
  • 신문게재 2020-10-23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구자용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초기인 1990년대 초반 전자파가 해롭다는 보도가 나가자 이에 재빠르게 편승한 상술이 나타났다. 납작하고 동그란 물체를 컴퓨터 모니터에 부적처럼 붙여두면 주위의 전자파를 모두 흡수한다는 상품이었다. 직진하는 빛이 휘어서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전자파를 작은 물체가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런 상품은 한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팔렸다. 의학이나 생물학 영역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기적의 식품이나 건강 관련 유사과학이 많은데 잘못 따라 하면 돈도 건강도 버리기 십상이다.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은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시달린다. 모두가 잘못된 지식과 믿음에 기반한 것들인데 교수가 설명해도 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절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인터넷에는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곳도 많다. 물리학의 영역에 속하는 유사과학의 단골 메뉴에는 에너지 공급 없이도 계속 일하는 영구기관이 있고 심령현상과 초능력을 다루는 신과학도 있다.



정치와 경제 등의 분야를 주로 다루는 월간지 신동아에서 2007년 8월 뜬금없이 특집 과학 기사를 실었다. 재야 과학자가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제로존 이론은 노벨상 0순위라고 주장했고 다른 많은 언론에서도 인용 보도했다. 제로존 이론은 언론 보도를 근거로 정부 연구비를 신청했고 다른 한편으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검증을 요청했다. 표준연에서는 전문가들의 검토 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정했고 제로존 이론이 시끄러워지자 한국물리학회에서 별도로 검증했으나 역시 같은 결과였다.

이것의 핵심은 미터, 킬로그램, 초 등의 여러 단위를 수로 치환했더니 기존의 물리학 방정식들이 모두 잘 맞았고 그래서 아예 모든 단위를 수로 바꾸어 단위를 없애면 과학에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물리학의 방정식들은 원래 실험으로 검증된 것으로 21세기 인류문명의 바탕인데 단위를 수로 바꾼다고 틀릴 리가 없다. 항상 잘 맞아야 한다. 아무튼, 중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진리는 아름답다더니 어렵다는 물리학의 정수는 알고 보니 이렇게 쉽고 단순했구나"하고 열광하는 추종자들도 많이 생겼다. 과학에 무지한 기자가 보도했고 대학 부총장을 지낸 공학박사와 유명 의대 교수도 적극 지지했다. 물리학 이론이라면서 물리학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온갖 철학자들의 어록을 다채롭게 인용하면서 자신들만의 성곽을 구축했다.



이들의 요청으로 2010년 3월에는 한국 과총에서 새로운 과학이론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물리학 분야의 전문가로는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와 내가 참석했고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제로존 이론의 옹호자로 지원사격을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물리학자의 부정 평가를 제로존 이론 측이 거부했다. 제도권 과학자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자생의 혁신적인 성과를 거부한다는 음모론이었다. 그럴 거면 토론회는 왜 요청했나?

제로존 이론이 세상에 등장한 지 13년이 지났다. 노벨상 0순위라고 광고했으나 성과가 나올 리 없으니 추종자들은 떠났다. 그 이론의 주창자는 이익을 얻었겠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를 배척하고 시간과 돈을 써가며 열광적으로 따라다녔던 사람들은 그만큼 인생을 낭비했다.

어느 분야에서나 혁신을 이루려면 기존의 전문가들과 대결해서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면 된다. 과거의 혁신들은 모두 이런 검증 과정을 거쳤다. 새로운 주장에 대해 궁금하면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어야 한다. 제도권 전문가들을 음모론으로 비난하고 외곽으로 피해 다니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잘못된 신념으로 이런 사기꾼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2.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3. "철도 폐선은 곧 지역소멸, 대전서도 관심을" 일본 와카사철도 임원 찾아
  4. 전기차단·절연 없이 서두른 작업에 국정자원 화재…원장 등 10명 입건
  5. 30일 불꽃쇼 엑스포로 차량 전면통제
  1. <인사>대전시
  2. 충남대-대전시 등 10개 기관, ‘반려동물 산업 인재 양성 업무협약’
  3. 대전시 제2기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4. 대전시, 반려동물산업 육성에 힘쏟는다
  5. 김태흠 충남지사, 천안아산 돔구장 건립 필요성·추진 의지 거듭 강조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이재명 정부가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것을 둘러싸고 지역 관가에서 설왕설래가 뜨겁다. 일선 현장에선 76년 만에 독소조항 폐지 기대감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 문화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환영기류가 우세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일각에선 개정안 국회 통과 때 자칫 지휘체계가 휘청이면서 오히려 주민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6일 대전 지역 공직사회에 따르면 인사혁신처가 전날 입법 예고한 국가공무원법 상의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둘..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대전시는 26일 시청 응접실에서 대전관광공사, ㈜인섹트바이오텍과 함께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를 위한 공동브랜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캐릭터 중심의 제품을 넘어 지역 재료·스토리·생산기반을 더 촘촘히 담아야 한다는 취지로 대전의 과학·바이오 정체성을 상품에 직접 반영하려는 시도다. 이번에 출시 준비 중인 '꿈돌이 닥터몽몽'은 인섹트바이오텍의 연구 포트폴리오로 알려진 자연 유래 단백질분해효소(아라자임) 등 바이오 효소 기술을 반려동물 간식 제조공정 단계에 적용해 기호성과 식감 등 기본 품질을 고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인섹..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열띤 경쟁 속에서 펼쳐진 공주시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5일 공주환경성건강센터에서 공주시와 중도일보가 주최·주관한 '2025 공주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안전 상식을 재밌는 퀴즈로 풀며 다양한 안전사고 유형을 학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74명의 공주지역 초등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골든벨을 향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본 대회에 앞서 심폐소생술 교육이 먼저 진행되자 학생들은 교사의 시범을 따라가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라고 묻거나 친구에게 압박 리듬을 맞춰보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