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1-10-04 09:5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5월 19일. 한국의 광주에서 군과 시민이 충돌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일본의 도쿄에 있었다.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직감했다.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부상당한 경험이 있었다. 즉시 짐을 꾸려 서울로 향했다. 그날은 너무 늦어 서울에서 묵었다. 5월 20일 새벽 김사복의 택시를 대절해 광주로 향했다. 입구에서 군인들에게 막혔다. 논두렁 샛길로 접근한 뒤 시민들의 트럭을 타고 광주 시내에 들어갔다. 대낮이었다. 시민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군인들이 저지른 처참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5월 21일 새벽, 총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았다. 광주역에서 총을 맞아 죽은 청년들의 시신이 트럭에 실려 있었다. 도청 앞에서 군인들의 집단 발포가 있었다. 태극기를 든 맨손으로는 조준해서 쏘는 군인들의 총알을 막아낼 수 없었다. 송원고 2학년 김기운을 비롯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에 죽었다. 병원마다 죽거나 부상 당한 시민들의 피로 흥건했다. 다른 시민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내건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했다. 필름을 모두 소진했다. 취재한 자료를 방송하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 다니는 것은 언론인의 할 일이 아니었다. 군부의 잔인한 폭력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어렵사리 검문을 거쳐 밤 11시 서울에 도착했다.

5월 22일 오전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갔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공항에서 바로 독일로 공수되었다. 그날 저녁 독일의 공영방송 ARD는 광주민주항쟁을 영상 보도했다. 나준영 MBC 영상기자의 논문에 따르면, 5월 19일 저녁 8시 'CBS Evening News'에 서울지국 유영길 영상기자가 촬영한 ‘오월광주’ 영상이 세계 최초로 보도되었다. ABC서울지국 최광태 영상기자 등 취재팀은 5월 20일 오전 상황을 카메라에 상세하게 담았다. 5월 21일 밤 일본 NHK는 CBS 유영길, ABC 최광태 등이 취재한 영상을 편집해 ‘오월광주’를 보도했다. 독일로 영상필름을 보낸 그는 나리타공항에서 3시간을 머문 후 서울로 돌아왔다. 가택 연금된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을 영상 취재했다. NHK 영상물에 취재 중이던 그의 모습이 남아 있다.

5월 23일 그는 다시 광주로 떠났다. 저널리즘에 투철한 기자의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영상은 거짓을 진실인양 왜곡하고 짜깁기 편집한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취를 비추는 준거였다. 그는 촬영한 자료를 다시 독일 방송사로 보냈다. 5월 27일 취재를 위해 세 번째 광주에 갔다. 그해 9월, 그는 동료와 함께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광주민주항쟁 다큐를 제작해 방송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취재하다 경찰의 곤봉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2016년 영면에 들었다. 그의 신체 일부는 생전의 바람대로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그의 이름은 ‘위르겐 힌츠페터’. 목숨을 걸고 광주민주항쟁을 국제사회에 알린 그의 저널리즘 정신을 기리는 상이 마련되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다. 전 세계 영상기자들을 위한 첫 국제보도상이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 제정했다. 5·18기념재단과 함께 한다. 대상은 그의 다큐멘터리 이름에서 따온 '기로에 선 세계상'이다. 뉴스 등 3개의 경쟁부문과 특별한 공로를 인정해 수여하는 '오월 광주상'을 수여한다.

올해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에는 13개 국가에서 25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벨라루스 영상기자 아르신스키가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체포와 구금을 겪으면서도 벨라루스 정부가 야당 후보들에게 자행한 선거방해 과정을 취재 보도했다. 두 명의 미얀마 영상기자들이 뉴스부문 수상을 했다. 시상식은 10월 말에 열린다.

힌츠페터를 세상에 알린 KBS 장영주 피디,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한원상 공동위원장,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의 이름을 빠트릴 수 없다. 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을 찾아 복원하고, 전 세계 영상기자들과 연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정통의 저널리즘에 복무하려는 한국 영상기자들의 특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존재하는 한, 더러는 더디고 막히더라도 결국 시간은 진실의 편이다. 눈 뜬 시민도 진실의 편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구도동 식품공장서 화재…통영대전고속도로 검은연기
  2. 유성복합터미널 공동운영사 막판 협상 단계…서남부터미널·금호고속 컨소시엄
  3. 11월 충청권 3000여 세대 아파트 분양 예정
  4. 대전권 대학 대다수 기숙사비 납부 '현금 일시불'만 가능…학부모 부담 커
  5. 김장 필수품, 배추와 무 가격 안정화... 대전 김장 담그기 비용 내려가나
  1. 대전교육청 교육부 시·도교육청 평가 '최우수'
  2.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전국 신청률 97.5%… 충청권 4개 시도 평균 웃돌아
  3. 대전대 박물관, 개교 45주년·박물관 개관 41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4. 최고 1436% 이자 받아챙긴 40대 대부업자 실형
  5. ‘여섯 개의 점으로 세상을 비추다’…내일은 점자의 날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3일 열리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수험생은 8시 10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며 반드시 수험표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단 모바일 신분증은 인정되지 않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교육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의 수험생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교육부는 수험생들을 향해 수능 하루 전인 12일 예비소집에 반드시 참여해 수험표를 수령하고 시험 유의사항을 안내받을 것을 당부했다. 수험표에 기재된 본인의 선택과목을 확인해야 하며 시험 당일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험 당..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약 7개월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잇따라 대전을 찾아 충청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4일 한남대에서 특강을 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5일 대전시청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등 충청권에서 여야 대표가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금강벨트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일 대전시청에서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내년도 국비 확보 현황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