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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빈 명예기자 |
들판의 곡간은 오곡백과로 넘치고 숲의 나무는 곱게 단장을 하며 새잎을 예비하기도 한다. 가을의 절정은 10월이 제일이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뒷산을 오르면서 심신을 수양하게 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 ㅡ어진 사람은 산을 즐기고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는 공자의 말이 새롭지 않다.
낮지도 않으면서 높지도 않고 얕지도 않으면서 깊지도 않은 평범한 산이건만 우람한 참나무와 푸르고 청량한 노송(老松)이 조화를 이루면서 철따라 변하는 산의 경관이 각박한 코로나19의 일상을 안정시키고 머리를 식히는 공간이 되고 있어 더할나위 없이 감사하고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 여기며 산을 오르내린다. 편마비의 다리에 균형을 잡고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하면서 한 발짝씩 딛고 산을 오른다. 정상인들이야 20분 거리를 기동불편한 몸으로는 한 시간 이상 걸리게 되니 극기훈련(克己訓練)이나 다름없다.
가을 숲길을 걸으면 망상이나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런 욕심이나 꾸밈을 목적에 두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걷게 되는데 문득 이런 글이 떠오른다.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ㅡ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못보고 돈을 움켜쥐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눈앞의 명예나 이익에 어두워 도리를 저버리고 한 치앞의 위험을 보지 못함을 깨우쳐주는 말로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편(說林訓篇)에 실린 말이다.
입산하여 수양할 때 쾌락과 욕망을 쫓아다니면 현실환경이 미래성찰을 묶어버려 졸속의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숲에 들어가 사슴을 쫓아다니면 큰 산을 보지 못하고 어느 한 곳에 집착하게 되면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여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릇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집착은 참다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기에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을 움켜쥐는 사람은 사람을 못본다는 말도 물욕에 눈을 가리게 되면 체면과 염치를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게되니 이 또한 똑같은 의미가 된다. 우리 속담에도 돈만 있으면 염라대왕도 저승의 명부에서 뺀다고 했으니 돈의 위력은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발상은 인간을 속물로 전락시키고 결국엔 각종 비리나 부정부패를 초래하게 되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세상은 부족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편향된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집착을 끊을 수는 없는가?
말년의 노인이 이제껏 살아온 고정관념은 끊기 어려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편협과 왜곡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지금 자신이 갇혀 있는 우물안의 안정감을 깨뜨려야만 더 큰 인생을 맞을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미쳐서 쫓아다니면 행복하지도 않고 누릴 수도 없다. 고정된 관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변화하는 현실에 발을 들여 놓아야 한다. 꽃과 나무와 숲과 바람을 한꺼번에 모두 품고 있는 큰 산에 올라 가을빛에 무르익는 숲의 가을산 정상에서 남은 인생 자투리 여정을 직시하면서 감사와 기도를 드리자.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을 바라보자.
노수빈 명예기자
--- 노수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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