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기록-44]“증조부 고향인 ‘제천 도화리’에 표지석이라도 설치했으면…”

[10년간의 취재기록-44]“증조부 고향인 ‘제천 도화리’에 표지석이라도 설치했으면…”

<인터뷰>‘피는 못 속여’…이태흥 4대 후손 이화연 선생, 23년간 국악기 다뤘다
이화연 선생, “이태흥 증조부, 매일 국악기 연주"
‘제천군지 기록과 제적등본 일치’에 깜짝 논란 이화연 선생, “늦게 알아서 죄송했다”

  • 승인 2022-03-07 09:36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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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흥의 4대 후손(後孫)인 이화연 선생(중앙)은 1997년부터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지 경기도 성남농협농악단에서 징과 꽹과리 파트를 23년간 담당했다.그는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이화연 선생 제공>
'청풍승평계(1893년 제천 청풍지역 창단)'에서 율원, 즉 단원이었던 이태흥(李泰興·1871~1940년)은 1918년 청풍승평계에서 평 단원이었지만, 세대교체 된 속수승평계에선 서열 2위까지 올랐다. 그는 속수승평계 단원 43명 중 '넘버2'까지 가는 등 중책을 맡았다. 지금의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역할쯤 된다. 이태흥은 아버지 이치인(李致仁)과 어머니 석씨(石氏)의 사이에서 고종 8년(1871) 6월 24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940년 4월 29일 오전 8시, 제천군 금성면 교리 67번지에서 사망했다. 사망 장소는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 교리(校里)다. 본보는 수개월여 끝에, 이태흥의 4대 후손(後孫)을 어렵게 만났다. 그가 바로 이화연(여·67) 선생이다. 이태흥의 증손녀인 그는 23년간 국악기를 다뤄왔다. 피는 못 속였다. 그는 증조할아버지 이태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또 그의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그를 다시 만나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을 들어봤다.



◆일문일답

▶'이태흥' 어른의 증손녀다. (보도 이전에)제천 청풍승평계 국악단체 등을 알고 있었나?

"2021년 제천소식지 '푸른 제천' 1월호 '사열이(청풍)'에 대한 기사 끝에 청풍 한벽루와 관련, 우리나라 고유의 관현악 발원지라는 글을 읽으면서 '청풍체, 하림조, 승평계'라는 역사적 근거가 있음을 읽었다. 학교 다닐 때 (제천 청풍)한벽루에서 전국 시조창이 열리면 어르신들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음률에 밝은 '율객이셨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청풍승평계 단원이셨다는 얘기는 본보 보도로 처음 알았다."



▶제천군지 내용을 토대로 본보와 함께 가족 제적등본을 함께 열람했다. 제천군지와 제적등본이 일치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증조부의 제적등본을 열람해 보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족보를 통해 알고 있었던 증조부님의 성함이 제적등본에는 '호'로 성함이 돼 있음을 알았다. 본보가 제시한 제천 군지 내용과 일치함을 알았을 때, 놀라움과 함께 자손으로서 죄송함을 느꼈다."

▶가족들은 증조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증조부께서 매일 집 밖으로 나가셔서 악기를 연주하고 지내시다, 집으로 오시곤 했었다'라는 이야기를 시어머니인 제 할머니께 들었다고 하셨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마을(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는 통정대부를 지낸 최씨 댁이 있었는데, 이후 고모님이 그 최씨 댁으로 시집을 가셨다. 증조부께서는 매일 그 댁에서 악기를 연주하시고 집으로 오셨다. 최씨 댁 할아버지와 제 증조할아버지는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서 대문만 다르지 아래윗집으로 한집처럼 살았다. 남매이셨던 아버지와 고모는 정이 돈독하셨고, 고모부는 어떤 일이든 아버지와 상의하셨다. 고모님 댁에는 여러 가지 국악기들이 있었다. 어릴 적 신기한 것을 보면 만져보고 싶었는데, 고모님 댁에 있는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태평소 등 여러 국악기를 만져볼 수 있었다. (청풍승평계와 관련한)골동품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몰되면서 챙기지 못해 물속에 잠겼다. 그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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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흥의 4대 후손(後孫)인 이화연 선생이 1997년부터 몸 담았던 경기도 성남농협농악단에서 징을 담당했다. < 이화연 선생 제공>
▶이 선생님의 성장과정을 듣고 싶다.

"아버지께서 독자셨고 제가 장녀다. 7남매의 맏이다. 6.25 참전을 하셨던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고, 대전 현충원에 영면해 계신다. 국가관이 투철하셨던 아버지께서는 교육열도 높으셨다. 초등학교 육성회장을 오랫동안 하시면서, 학교발전과 지역사회 일을 하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그 시절에 한글을 터득하고 입학을 했다. 중·고등학교에 가기 어려운 시절에 7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내셨다. 큰 동생은 육군삼사관학교를 졸업해 군인으로 근무했다.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셨다."

▶이 선생님은 증조할아버지처럼 음악에 대한 소질이 있는가.

"중·고등학교 시절이다. 월요일 조회 때마다 교단에 올라 애국가, 교가 등을 지휘했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께서 합창단을 만드셨는데, 전근 가신 후 (합창단이)없어졌다. 1979년 제천문학 6집부터 활동(시)했다. 청풍면민 체육대회 때면 마을 합창단을 지휘하며 연습을 했다. 교회에서 성가대에 잠시 몸담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입주하면서 만돌린(기타와 비슷한 현악기)을 1년간 배우다가 바쁜 일로 중단하게 됐다. 1997년부터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지 경기도 성남농협농악단에서 징과 꽹과리 파트를 23년간 담당했다. 성남시(향토문화재 제15호)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지경 다지기) 보존회(보존회장 아천 방영기)에서 여러 차례 경기도대회에 출전, 성남시가 수상을 하기도 했다. 2019년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이 많으셔서 농악단은 아쉽게 해체됐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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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월요일 조회 때마다 교단에 올라 애국가와 교가 등을 지휘했던 이화연 선생(붉은 색·지휘자)은 젊었을 때, 제천시 청풍면민 체육대회에서 마을 합창단을 지휘했다. < 이화연 선생 제공>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유품은 소장하고 있는가.

"증조부님의 유품이 남아있는 것이 현재 없다. 너무 많이 아쉽다."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웠고, 후회되는가.

"고모님 댁에 있던 국악기(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가 수몰로 인해 물에 잠겼다. 우리 집이 아니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무척 아쉽다."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유품, 친인척 등이 소장하지 않고 있나.

"우리 집이 큰집이기 때문에 친·인척이 유품 등을 소장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증조할아버지의 사진은 존재했나, 아니면 그 사진을 본적이 있나. 또 국악기도 봤나?

"시골 가정집에는 보통 벽에 사진들을 큰 액자에 넣어 걸어놓았는데, 그 속에 두루마기를 입고 앉으신 분이 증조할아버지라고 어릴 적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수몰로 이사를 하면서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증조할아버지 개인 국악기는 못 보았고, 고모님 댁에서 할아버지와 연주하셨다는 국악기 등은 봤다."

이화연 선생
본보 취재팀은 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이화연 선생을 다시 만나,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을 들어봤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증조할아버지의 성품은 어떠셨나.

"할머니께서 성품이 완고하셔서 무섭고 어려웠다고 말씀 하셨다. 할머니께는 시아버님이셨으니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가족 중에 음악을 전공한다거나,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나.

"큰 남동생, 둘째 남동생이 노래를 잘했다. 둘째는 동네 콩쿠르 대회에서 시상품으로 양은 솥을 받아 온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도 목청이 좋으셨다."

▶증조할아버지와 관련해 자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

"동생들에게, 자녀들에게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전국에서 처음 조직됐던 국악단체인 '청풍승평계, 속수승평계' 단원이셨음을 본보가 어렵게 밝혀냈다고 말해 줬다. 동생들은 증조부의 이 같은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증조할아버지가 128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앞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면 좋겠는가.

"아버지 계실 때 증조부님의 묘를 지금 가족묘로 이장하려 했으나 이장하지 못했다. 동생들과 상의해 볼 생각이다. 청풍면 도화리에 청풍승평계와 관련한 비석이나 입간판 등을 세웠으면 좋겠다. 청풍 민속촌에 있는 한벽루는 국악공연이나 연습을 했던 곳으로 어릴 때 봤기 때문에 그곳에 청풍승평계의 내용이 표시된 비석이 1차 적으로 세워져서 민속촌을 찾는 이들에게 '청풍 국악단체'를 전국에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향인 제천시민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고향인 제천은 나에게도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의병의 고장으로, 음악의 고장으로, 약초의 고장으로, 청풍호의 아름다운 관광의 도시로 많이 발전했으면 한다. 지인 등 여행가는 분들에게 제천 청풍을 늘 소개하고 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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