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해태와 정의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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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해태와 정의의 여신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5-1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통령 집무실과 공관 이전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다. 이전에 찬성하는 쪽은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청산을 앞세웠고, 반대하거나 문제 삼는 측은 비용이나 안보를 문제 삼았다. 서둘러서 이전하는 것이 맞을까? 개인이 새로운 주택을 마련하는데도 심사숙고, 치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집장사가 아니고서야 평생 살 집을 설계한다. 거기에다 살아갈 철학을 담는다. 다음 대통령 때 또 옮길 것인가?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전할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통령 취임 전후로 떠들썩했던 일 하나가 이른바 '검수완박'이다. 법안의 입법 절차가 끝났다. 아직도 물밑에서 공방이 치열한가 보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가 최선인지부터, 졸속 처리, 입법 과정에서의 꼼수 만연, 국회 심의와 표결권 침해, 국민 기본권 침해 등 논란거리가 많다. 법이 상식을 벗어나면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들이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법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면 누구나 피할 궁리만 한다. 법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 공적 구조가 무너지고, 무질서와 무법천지가 된다.

매사에 너나없이 왜 그리 서두를까? 예전엔 벽돌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담았다. 소중히 생각했다. 지나치게 눈앞의 선악이나 현상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그림 하나로 되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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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광화문 좌우에 있는 해태상의 하나다. 원래는 광화문 70~80m 전방에 있었으나 2010년 광화문 복원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한다. 해태는 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상상의 동물이다. 한자어로 해치라 하며, 신양(神羊), 식죄(識罪), 해타(?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체적으로 머리에 한 개의 뿔과 갈기가 있고, 포효하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해태는 정확한 판단력과 예지력으로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법과 정의의 화신으로 인식되었다. 허균 저 《궁궐장식》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해치가 법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法'(법)의 옛 글자에서 스스로 드러난다. 수면이 평평하듯이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해태를 보고, 정사 돌보는 임금과 관원은 물론,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공평무사(公平無私)와 광명정대(光明正大)를 기원하고 다짐하였다. 한편, 천재지변, 화재 등 재앙을 물리치는 신성한 짐승으로 간주, 건축물의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건축물의 위용을 더하기도 한다. 광화문의 좌우뿐이 아니다. 근정전 처마마루에서도 해태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법 집행자의 모자(세종실록 31권, "어사대부, 중승 등은 모두 해치관을 쓰며……"나 흉배(단종실록 12권, 문무관의 상복 문장을 정하며 "대사헌은 해치로 하고……")에 새기기도 하였다. 늘 경계로 삼았다.

법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상을 보면 안대로 양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천칭(天秤)을, 다른 한 손에는 검을 쥐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건물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앉은 채,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왜 안대를 벗겨 만들었을까? 법관은 오로지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하는데, 좌고우면하는 우리 법무 상황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천칭은 항상 사물을 일정하게 계량한다. 그로 인하여 활동을 촉진하고 억제하기도 하며, 분쟁해결과 자원배분이 가능해진다. 물과 같이 항상 평형을 유지해야한다. 공평무사할 때 평등과 정의가 실현된다. 죄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른다.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 ~ 1892, 독일 법학자)이 역설하지 않았는가? "저울 없는 칼은 폭력이고, 칼 없는 저울은 무기력 그 자체이다" 해서, 질서와 안녕 등 공동체의 지침이 된다. 법이 무너지면 조직이 와해된다. 상징물 하나가 이 모두를 역설하고 있다.

서두르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자간에도 의미가 있고, 만 마디 말보다 눈짓하나가 더 위대할 수 있다. 돌아보아야 남은 반을 볼 수 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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