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을 거듭한 고암의 작품세계… 극한 상황 속에도 놓을 수 없었던 예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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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거듭한 고암의 작품세계… 극한 상황 속에도 놓을 수 없었던 예술 정신

이응노미술관 소장품전 '뉴 스타일 이응노' 개최
4월 2일까지 이응노의 유럽 진출 후 작품 한눈에

  • 승인 2023-01-17 09:57
  • 신문게재 2023-01-18 9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포스터
고암 이응노 화백에겐 '뉴 스타일'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암은 동양의 전통적인 필묵 기법에 서양의 추상 표현을 접목한 문자 추상, 군상 시리즈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현대미술계 거장이다. 1960년대 현대미술의 근원지인 파리에 건너간 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파리화단의 대표적인 미술사조였던 앵포르멜(Informel) 영향을 받아 다양한 추상 표현방식을 수용했다.

도불 이후 그가 시도했던 실험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소장품전인 '뉴 스타일, 이응노'를 연다. 전시는 고암의 유럽진출 이후 작품 세계 그리고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수감됐을 때에도 묻을 수 없었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편집자 주>

이응노는 도불 이후 1962년 프랑스 폴 파케티 (Paul Facchetti) 화랑 개인전부터 한국에서 해왔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도불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를 살펴보면 한국전쟁 등의 혼란 속에 유럽미술의 유입이 자연스럽게 중단됐었다. 이에 한국 미술가들은 세계 미술의 흐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한 위기의식은 파리에 대한 직·간접적인 동경과 열망으로 표출돼 점점 파리로 향하는 한국 예술가들의 수가 늘어났는데, 고암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구성, 1971 111x118cm, 비닐에 아크릴
구성, 1971 111x118cm, 비닐에 아크릴
전시는 이응노가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인 1960~70년대에 제작된 추상화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장은 총 4개의 테마로, 1 전시실에서는 이응노의 아카이브 자료와 1960~70년대 큰 전환점을 맞이한 고암의 새로운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한지 외에도 다른 물성을 통해 파격적인 형태의 추상화를 시도했던 고암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불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작품, 그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아카이브(기사, 포스터)를 함께 전시해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2 전시실은 이응노의 도불 직전 1960년대 작품을 소개한다. 60년대 전통 방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개성과 철학을 가미한 초기 실험적 초상화 작품들이다. 그의 실험정신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작품인 콜라주, 한지 압인을 이용한 릴리프 작품 등을 전시한다.

구성, 1962, 64x75cm, 캔버스 위에 종이 콜라주, 채색
구성, 1962, 64x75cm, 캔버스 위에 종이 콜라주, 채색
그는 초기 콜라주 작업 당시 잡지를 찢어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표현에 필요한 색상이 인쇄된 페이지를 선택해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런 작업 과정을 통해 고암은 전통 재료를 활용해 표현하는 방식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이후 색을 칠한 한지를 조각처럼 사용하는 등 속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재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1965, 265x130x12cm, 나무에 종이죽
마스크, 1965, 265x130x12cm, 나무에 종이죽
3 전시실은 이응노의 추상 조각을 소개한다. 조각에 대한 이해와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조각 드로잉도 함께 전시해 작품 구상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이응노의 사고 흐름을 함께 따라가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구성했다. 국내에서는 평면 회화에 국한됐던 그의 작업 방식은 유럽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절묘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LMSC-0104 구성, 연도미상, 52x40x22.3cm, 철판
구성, 연도미상, 52x40x22.3cm, 철판
4 전시실에는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당시 이응노가 들고 나왔던 옥중화 중 서대문 구치소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1967년 고암은 동베를린 사건으로 체포돼 2년 넘게 수감생활을 했다. 서울 구치소를 거쳐 대전 교도소와 안양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이 기간에 약 3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옥중 생활 그린 작품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자화상'이다. 추위로 괴로웠을 때를 자화상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은 이목구비를 묘사하거나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 정적이고 차분한 덩어리만을 표현했는데 이응노는 큰소리로 항변하기보단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불에 의지하며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자화상, 1968, 37x41cm, 한지에 수묵
자화상, 1968, 37x41cm, 한지에 수묵
이응노 미술관은 파티션 너머로 자화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놨다. 감옥에 갇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예술과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 고암의 감정을 관객 역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1월 17일부터 4월 2일까지다. 류철하 이응노미술관장은 1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2023년을 여는 이번 소장품전을 통해 동양적 정체성이 담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창조하기까지 이응노 화백의 여정에 많은 관람객이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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