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통합정치에 대한 단상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통합정치에 대한 단상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승인 2023-08-29 09:35
  • 신문게재 2023-08-30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유재일 대표님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흔히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거와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미래와 상상을 다루는 영역이기에 가정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제에서 역대 정부수반의 통합정치에 관한 단상(斷想)이 가능하다. 권위주의 시대에서의 통합정치는 그 자체가 형용모순이지만, 비교 차원에서 코멘트하고자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장면 부통령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그에게 부통령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했더라면, 85세의 노년에 하와이로 망명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총선에서 야당에게 1.1% 포인트 차이로 졌을 때 최소한의 자유화 조치를 취했더라면, 비극적인 결말은 피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이 있었을 때 6·29선언을 자신이 직접 발표했더라면, 눈을 감기 전에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계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 권력기반이 양호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통합정치를 외면하는 바람에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 불명예를 안은 정부수반들이 적지 않다. 장면 국무총리는 4·19혁명에 의해 수립된 제2공화국 정부를 거국내각이나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신민당과의 연립내각으로 운영했더라면, 경제건설제일주의를 속도감 있게 추진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을 통해 권위주의와의 단절을 시도한 만큼 인치가 아닌 민주적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했더라면, 정경유착을 최소화하고 외환위기를 예방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에게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조건을 달지 말고 연정을 제안했더라면, 역사적 타협의 단초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야당 후보보다 530여만 표 차이로 압승한 것을 기화로 정치보복의 악습을 끊었더라면, 사익편취의 오명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총선에서 1석 차이로 패배했을 때 국정 쇄신과 당내 비주류와의 소통을 추진했더라면, 탄핵을 면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시민집회로 집권했더라도 대선에서 41.08%를 득표했기 때문에 탄핵을 찬성한 각 정파의 지도자나 대선 후보들을 내각에 합류시키던지 아니면 그들로부터 천거받은 인사를 기용했더라면, 이렇다 할 국정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두었을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심판에서 국회탄핵심판소추위원장의 역할을 한 야당의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을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법무부장관에 기용했더라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이처럼 명예스럽지 못한 정부수반들과 달리 통합정치를 성사시켜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은 정부수반들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에서 36.6%를 득표할 정도로 취약한 권력기반을 비록 보수연합이지만 '3당합당'을 통해 확대함으로써 200만호 아파트 건설을 통해 중산층을 육성했으며, 북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 간의 연대인 'DJP연합'을 성사시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키는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해 복지국가의 초석을 마련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라는 속담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죄는 지은 데로 덕은 닦은 데로」라는 제목처럼 사필귀정으로 귀결된다. 하물며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심은 여야 정치지도자들에게 통합정치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리더들이 통합정치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정치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대화를 하고, 밥도 함께 먹고, 산책도 함께 할 수 있다. 이래야 국정에 대한 협력을 허심탄회하게 요청할 수 있고, 정책과제의 추진을 둘러싼 이견들을 지혜롭게 조정할 수 있다.

지혜가 있는 정치리더라면, 역대 정부수반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용기가 있는 정치리더라면, 지금(Now)부터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리더는 민심은 바다와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한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물품 전달식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