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천안성정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지난 1966년이다. 지금도 마치 어제 일인 양 또렷이 기억하는 채효숙 선생님이 나의 1학년 때 담임이셨다. 엄마도 없는 녀석이 줄곧 1등을 질주하자 기꺼이 관심을 드러내셨다.
수업이 끝나면 남으라고 하면서 잔무를 맡기셨고, 이런저런 주전부리까지 주셨다. 심지어 봄 소풍 때는 내 몫의 김밥 도시락까지 준비하여 주시는 바람에 감격하여 엉엉 울기까지 했다.
"울지 마. 반듯이 살면 반드시 좋은 날도 올 거야!" 홍찬선 작가의 첫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그해 여름>은 조국과 관련된 단편소설 9편을 모은 옴니버스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전임 장관 '조국 사태'를 소설 속 상상의 나라에서나마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2부 하얀 운동화>는 단편 8편을 모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이어서 거부감이 없다.
이런 가까운 이야기들이 팍팍한 '조국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저자의 부언이 살갑다. 이 책에 담긴 17편의 작품 중 단연 눈길과 오감까지 끌었던 건 <하얀 운동화>(P.307~317)였다.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등교하는 초등학생 이소명과 홍현숙 담임선생님이 주인공이다. 수업에 이어 교실 청소까지 마친 소명은 그러나 집에 가지 못 한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거늘 누군가 자신의 검정고무신을 신고 간 때문이다. 분한 마음에 눈가의 물기까지 가득한 소명에게 선생님은 자신의 하얀 운동화를 흔쾌히 내준다. 덕분에 다리 안 다치고 무사히 집에 온 소명이지만 아뿔싸~!!
잃어버린 고무신을 사려고 이튿날 엄마랑 천안 장날에 간 게 그만 화근이었다. 포장 안 된 진흙길을 오가는 바람에 하얀 운동화는 그야말로 '죽 쑤어 개 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기겁하여 하이타이에 운동화, 칫솔까지 동원하여 깨끗이 빨았으나 부뚜막에서 이를 말리던 중 그예 연탄불에 타고 만다. 분노한 엄마는 소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팼지만 소명은 전혀 아픔을 몰랐다.
그것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의 이중주가 빚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서두에서 50년도 더 지난 '역사의 흔적' 중 하나인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채효숙 선생님을 기억하는 건 그만큼 감사함이 대단한 때문이다.
고름은 살이 안 되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홍찬선 저자는 전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쳤으며, 동국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서강대 MBA를 졸업했다. 서강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中央大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청화대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미국의 금융지배전략과 주식자본주의』, 『패치워크 인문학』, 역서로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등이 있으며, 시집 『틈』, 『결』, 『길 - 대한제국 鎭魂曲』(2018), 『삶 - DMZ 解寃歌』(2019), 『얼 - 3.1정신 魂讚頌』(2019)이 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던 1970년대에 한 농촌 아이가 살았다.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에 어울리게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는 부지런하고 선한 부모님 슬하에서 세상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며 자랐다.
산과 달과 별이 친구였고, 개울과 수풀이 놀이터였으며 나무와 꽃, 오소리와 물고기가 또 다른 교과서였다. 대학 진학으로 서울로 올라와선 도시의 심장부에서 일했다.
금융과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일선에서 뒤돌아 볼 사이, 숨 돌릴 틈 없이 일했다. 짝을 만나 가정을 일구고 자녀 넷을 알토란으로 키웠다. 이제 도심 속 장년이 된 그가 그 해 여름의 소년을 마주한다.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 된 시간들을 하나씩 더듬으면서 저자가 마주한 일상과 편린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진수성찬(珍羞盛饌)으로 가득 담겨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