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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 충남대학교 교수 |
“남자들은 저녁이 되면 퇴근해서 돌아와 가족이 마련한 음식을 찾을 테지만, 집에 있던 여자들이 온종일 먹지 않았다는 것이 곧 밝혀질 것이다. 그들은 배고파하지 않았다. 더욱 간절해진 아내들과 어미들은 이 남자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간디가 죽어 가고 있는 마당에 할 수 없다는 걸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속내를 밝혔을 것이다. 식당과 놀이 시설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그 중 일부는 주인이 기꺼이 문을 닫아 버렸다. 감정의 신경이 회복되었다.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간디는 언제 회복식 과정을 시작해야 할지 알았다.”
차크라바르티가 저술한 ??유럽을 지방화하기??에 나오는 이 장면은 1946년 무렵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라가 분할되는 사태가 임박하자 캘커타의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폭동이 일어났고, 그 도시에 있던 간디가 자신의 동포인 힌두교도들의 행태에 단식으로 맞섰던 상황을 한 인도 지식인이 회상한 내용이다.
이 장면에서 읽기를 멈춘 이유는 ‘분할과 폭동’ 그리고 ‘고통과 회복’이라는 단어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갈등과 분열이 일상화되고 있다. 다민족 다문화를 포용한 민주와 자유의 국가로 자처하는 미국에서는 반이민 정책을 강행하며 거대한 장벽을 세우려 하고, 이민자들은 생업을 중단하는 행동으로 그에 맞서고 있다. 이념과 종교, 자본과 국경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발발한다. 우리 사회는 국정농단과 탄핵을 두고 촛불과 태극기의 맞불 집회로 분열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앞에는 혐오와 빈부격차, 주변국들과의 외교 안보와 관련된 마찰, 이념의 갈등 등 크고 작은 문제가 놓여있다.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 가장 절실한 때이다. 혼란스럽게 분열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폭동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간디는 적을 향하는 대신 자신의 동포에게로 ‘단식’이라는 목숨을 걸었다. 단식은 실제적인 의미 외에 분노와 대결을 나를 포함한 우리 안으로 가져와 정의를 성찰하고 실천하겠다는 결의의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간디의 단식과도 견줄 만한 어떤 결행을 해야 할까. 비폭력 저항으로 평화를 추구했던 간디의 삶도 그러하거니와 ‘감정의 신경’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무신경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는 죽비와도 같은 신호이다. 회복된 감정은 폭동, 분노, 갈등을 압도하는 다름 아닌 ‘고통!’이다. 고통은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내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고통을 감내하는 순간 공감과 인간다운 품격이 지속된다.
부끄러움과 성찰 또한 그 동안 쌓여온 우리의 민낯을 직시하고 변화를 이끌 중요한 시금석이다. 끝내는 가짜와 거짓말로 왜곡되었던 사실과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희망은 깃들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누며 그 상처를 회복해 나갈 때에 모멸찬 시선과 폭력의 말들도 거두어질 것이다. 찬바람과 눈보라를 견디었던 나무들은 흔들리며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는 언제 회복식 과정을 시작해야 할지 알고 있다. 나와 타인이 함께 고통을 나누는 사이 우리에게 새살이 돋는 회복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겪은 참담한 고통의 원인과 의미를 명징하게 기억하면서 너무 재촉하지 않는 건강한 회복이어야 한다. 바야흐로 2017년 봄이다. 새봄이어야 한다.
김정숙 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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