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헤밍웨이도 즐겨마셨다는 모히또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헤밍웨이도 즐겨마셨다는 모히또

  • 승인 2017-07-20 16:1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모히또 한 잔 할래?” 응? 모히또? “마셔봐, 너도 반할거야.” 그렇게 나의 모히또 입문은 시작됐다. 여름이 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모히또가 생각난다. 카페 창가에 앉아 여름 한낮의 이글거리는 땡볕이 내리쬐는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모히또를 마시는 느긋한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호사다. K는 내 오랜 친구다. 간호학을 전공한 친구는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근무한다. 대전에서 대학을 나온 K는 젊은 날의 추억이 서린 대전이 그리워 종종 대전에 내려와 나와의 회포를 푼다. 육식을 하지 않는 친구인지라 우리가 먹는 메뉴는 늘 한정돼 있어 갈 수 있는 식당은 두세 군데 뿐이다.

그 중 중구청 앞 대흥동 골목에 있는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나 다름없다(카페 이름으로 보아 주인은 ‘빨강 머리 앤’ 팬이다). 그 곳에서 친구는 새우볶음밥이나 김치볶음밥을 먹고 난 크림파스타 내지는 돈가스를 먹는다. 이 카페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여러 가지 꼽을 수 있지만 그중 압권은 수프 때문이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을뿐더러 식품회사에서 나오는 가루수프를 끓인 것이 분명한데도 거의 중독지경이다. 나와 친구가 의아해 하며 늘 하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그 수프에 마약성분이 있는 거 같아. 유독 그 수프가 생각난단 말야.”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고소하고 뽀얀 수프를 두 컵 가득히 먹은 후에야 우리는 한숨을 돌린다.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해 여름 어느날도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서 친구가 모히또라는 걸 주문했다.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첫 맛을 보자마자 모히또라는 수상쩍은 이름의 음료에 반해버렸다. 난 위장이 약한 탓에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아이스커피는 아무리 더워도 입에 댈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냉면도 내 돈 주고 사먹은 적이 없다. 땀이 뻘뻘 나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음식을 찾는 까탈스런 체질이다. 비빔국수와 팥빙수는 예외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여름만 되면 모히또라는 이 무시무시한 음료를 찾는다.

요놈의 상큼하고 톡 쏘는 모히또를 빨대로 쪽쪽 빨아대던 중 친구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뺨과 눈자위, 목덜미가 발그족족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 몸에 열기가 피어오르며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알고보니 모히또는 단순한 청량음료가 아니었다. 알코올이 들어간 칵테일이었다. 술을 못마시는 우리는 대낮부터 얼굴이 불콰해져서 깔깔댔다. 한참동안 죽 치고 앉아 취기가 가신 후에야 카페를 나올 수 있었다.

마법의 칵테일 모히또. 모히또는 헤밍웨이가 럼주의 나라 쿠바에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모히또는 그 옛날 해적들이 퍼마셨던 ‘럼’을 기본으로 만든다. 긴 잔에 민트, 라임, 설탕을 넣어 봉으로 민트 잎을 적당히 찧어 즙을 낸 다음 럼과 설탕을 넣어 마신다. 얼음과 소다수를 넣거나 생수를 넣기도 한다. 모히또와 쿠바 그리고 헤밍웨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했던 헤밍웨이에게 전쟁과 여자, 술은 소설의 원천이었다. 그는 스페인 내전 등 전쟁이 터지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무려 네 번이나 결혼했다. 그것도 모자라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는 천하의 마초였다. “가장 훌륭한 작품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쓸 수 있다”고 말했듯이 헤밍웨이에게 여자는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였던 것 같다.

전 세계를 내 집 앞마당처럼 누비며 투우를 즐기고 낚시와 복싱에 몰두하는 야성적인 남성 이미지가 강한 헤밍웨이지만 평생 글쓰기에 천착한 집념의 작가이기도 했다. 주어와 동사로만 된 문장을 추구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유명했던 헤밍웨이는 쿠바 바닷가의 카페에서 모히또를 마시며 ‘노인과 바다’를 썼다. 그러나 젊은 날 몸을 너무 소진한 탓에 노년에 온갖 질병을 끌어안고 살다 결국 엽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 말년에 노벨문학상을 타는 영광을 누렸지만 노년의 외로움과 불안한 성정으로 괴로워했던 헤밍웨이를 생각하며 모히또를 마셔야겠다. 인생은 덧없는 것. 아! 이번 생에 이병헌과 모히또 가서 몰디브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글른 것 같다. 아바나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헤밍웨이와의 모히또 한 잔은 더더욱 날 새지 않았나.

짠내 나는 인생,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뭘까.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는 세상. 그럼에도 인정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후의 대흥동 그 골목을 오늘도 거닌다. 2층 설탕수박 클럽의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다. 청춘의 한 시절을 열정의 도가니에서 허우적대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실연의 상처로 가누지 못할 만큼 소주를 들이켜며 울음을 쏟아내던 어린 후배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세월의 흔적은 먼지가 되어 유리창을 뿌옇게 흐려 놓는다. 인생 뭐 있나. 친구와 모히또 한 잔! 그거면 됐다.

우난순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KINS 기밀 유출 있었나… 보안문서 수만 건 다운로드 정황에 수사 의뢰
  2.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3.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4. 수도권 뒤덮은 러브버그…충청권도 확산될까?
  5. [춘하추동]새로운 시작을 향해, 반전하는 생활 습관
  1.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2. 3대 특검에 검사 줄줄이 파견 지역 민생사건 '적체'…대전·천안검찰 4명 공백
  3.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4. aT,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 위해 총력 대응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반석역 3번출구, 버드내초인근 상권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반석역 3번출구, 버드내초인근 상권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직원 대부분 반대·이직 동요"…해수부 이전 강행 무리수
"직원 대부분 반대·이직 동요"…해수부 이전 강행 무리수

"해수부 전체 직원의 86%, 20대 이하 직원 31명 중 30명이 반대하고, 이전 강행 시 48%가 다른 부처나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최민호 세종시장이 7월 2일부터 예고한 '해수부 이전 철회'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날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5동 해수부 정문 앞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란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해수부 이전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을 정부부처 공무원을 넘어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발걸음이다. 그가 해수부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은 '지역 이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