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29] 보성소리의 핵심…붓글씨로 쓴 ‘정응민 사설집’ 누가 가져갔나?

[10년간의 취재 기록-29] 보성소리의 핵심…붓글씨로 쓴 ‘정응민 사설집’ 누가 가져갔나?

성우향 판소리 전수소 벽에 걸린 5명창 흑백사진과 ‘정응민 사설집’ 행방 묘연
국악계 “광대, 소리책 논문 쓸 목적으로 빌려간 연구자들이 아직까지 반납 안 해”
정응민 사설집, 보성소리 등 ‘판소리 사설 연구’에 핵심 자료

  • 승인 2021-11-15 10:50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성우향 사진5_6
2006년 3월 17일 성우향 명창이 국악음반박물관에 기증한 보성소리 심청가 창본(왼쪽). 1953~1957년 위계향 글씨 필사본. 성우향 명창이 정응민 문하에서 보성소리 심청가를 학습할 때 보며 공부한 소리책이다. 2006년 3월 17일 성우향 명창이 국악음반박물관을 방문해 이 심청가 창본을 기증하고 촬영한 기념 단체사진(오른쪽).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성우향(成又香·본명 성판례·1933~2014년) 명창의 국악 스승은 염금달, 강도근, 한애순, 정응민, 박초월, 박록주, 김여란, 성금연, 김숙자 등이다. 그중 대표적인 스승은 송계 정응민(鄭應珉·1896~1963년) 명창이다. 정응민은 근대 전기 5명창(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 이후 '판소리의 대부'였다. 성 명창은 전남 보성군 정응민 집에서 7년간 지내면서 판소리를 배웠는데 이때가 성우향이 판소리에 가장 혼신을 다해 몰두, 득음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응민은 전남 보성에서 정착하며 제자들을 정성껏 양성했고, 그래서 그 지명에 따라 그의 소리제를 흔히 '보성소리'라고 한다. 정응민은 스승들로부터 물려받은 소리를 '정응민 스타일'에 맞게 집대성해 보성소리를 완성했다. 현재 소리꾼 절반 이상이 '보성소리'를 직·간접적으로 배우고 전수하고 있다. 판소리의 대표적인 제(制)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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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무렵 성우향 명창이 박초월, 김소희, 한농선, 김경희, 김정희 등과 함께 취입한 '창극 춘향전 전집'. 10인치 LP음반의 이 2집 앞표지 사진이 성우향 명창 모습이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이처럼 보성소리가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보성소리의 핵심은 '정응민·김명환·성우향(정권진·조상현·성창순 등의 세대)·위계향'으로 압축된다.



돈과 명예, 그리고 지위 등을 멀리했던 정응민. 그는 시골에 묻혀 지내면서 순수 정통파 소리를 후학들에게 지도했던 당대 판소리계의 큰 스승이었다. 만석꾼 아들로 태어나 판소리에 깊게 빠졌던 김명환 명고수. 정응민과 김명환 곁에서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고 바로 잡았던 귀명창 위계향. 그리고 성 명창이다. 정응민과 김명환, 위계향은 성 명창에게 판소리의 거의 모든 것을 전수했다.

성 명창 역시, 그렇게 물려받은 판소리 진수를 500명 이상의 제자들에게 전파시키고 정통 판소리를 바로 세웠다.

그는 정통 판소리를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성우향 명창은 1998년 7월 17일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과의 대담시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니그덜(제자들)이 실감 날 거여. 이 나마라도(이만큼이라도) 십분의 일(10분의 1)이라도 (보성소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 내 고집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그의 목소리는 평소 때보다 더 컸다고 한다.

성 명창은 스승 정응민에게 배운 판소리 가치, 진면목 등을 '서울 신림동'에서 쏟아낸다. 그는 1985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5동에서 (사)판소리보존연구회 분실(성우향 판소리 전수소)을 개원해 제자 양성을 본격화 했다. 이때부터 정응민-성우향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의 전파력이 집중된 시기다. 성 명창 판소리 전수소는 한때 매월 셋째주 토요일 '판소리 감상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 10여년 동안 국립창극단 단원들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가르칠 정도로 보성소리 전파에 매진했다. 보성소리는 성 명창에게 전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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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열린 성우향 명창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 장면.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성 명창은 살아생전 가장 아꼈던 것 역시, 보성소리와 관련된 것이다. 무엇일까. 스승을 비롯한 옛 명창들의 낡은 사진과 그가 정응민에게 배웠던 판소리 사설집이다. 성 명창은 전수소 개원과 함께 가장 아꼈던 물건들을 소중하게 다뤘다. 먼저, 이동백·김창환·김창룡·정정렬·임방울 명창의 흑백 증명사진인데, 그는 이들의 사진을 모아 전수소 벽면에 걸어 놨다. 성 명창은 5명 명창의 흑백 사진의 원본을 성순종 씨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성 명창은 '5명 명창의 흑백사진'을 수십년 동안 보물처럼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애지중지 했던 5명 명창의 흑백사진 원본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 이 흑백사진과 함께 박록주 명창과 자신의 인물사진도 없어졌다.

특히 그가 가장 아꼈던 스승 '정응민 판소리 사설집' 대부분을 2000년대 초반 누군가가 가져간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위계향 귀명창은 '만년필'로 기록한 정응민제 보성소리 춘향가·심청가·적벽가 소리책, 그리고 '붓글씨(위계향)'로 써내려 간 정응민제 보성소리 춘향가 소리책을 성우향 명창에게 줬다. 성 명창은 보물 같은 이 소리책을 잘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다. 이 소리책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2001년 12월 16일 KBS-TV에 의해 방송된 보성소리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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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성우향 명창을 표현한 설치미술. 성우향 명창 판소리 춘향가 '긴 사랑가' 공연 장면을 형상화 2021년 작품.<국악음반박물관 제공>
국악계에 따르면 당시 판소리학 연구자들이 성 명창의 '정응민 판소리 사설집'들을 소리책 논문 등을 쓸 목적으로 빌려간 후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만년필로 기록된 정응민제 보성소리 춘향가·심청가·적벽가 소리책을 1998년에 '판소리 명창 성우향' 평전 집필시 복사해 놨다. 복사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적벽가 소리책은 그 평전 책에 영인돼 실려있다. 또 국악음반박물관이 성우향 명창 사진첩을 복사해 놓은 사진자료, 전국에서 수집한 성우향 명창 음반과 사진들도 보관돼 있다.

특히 2006년 성우향 명창은 또다른 정응민제 보성소리 심청가 소리책(위계향 붓글씨 원본)을 지참하고 국악음반박물관을 방문해 "이 또한 소실될 우려가 있다"며 국악음반박물관에 기증, 현재 이 소리책 원본 한권이 보관돼 있다.

노 관장은 "성우향 명창이 간직하고 있다가 사라진 정응민제 판소리 사설집 필사본들은 판소리 역사, 소리책 등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품"이라며 "이 사설집들이 다시 빛을 본다면 판소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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