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혁신시대의 문화유산' 철도보급창고 이전에 부쳐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기술혁신시대의 문화유산' 철도보급창고 이전에 부쳐

노기수 대전시 문화관광국장

  • 승인 2023-09-11 17:05
  • 신문게재 2023-09-12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노기수 국장
노기수 국장
올해 5월 국가문화유산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이제 문화재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문화유산'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문화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 시행과 함께 지난 60여 년간 제도적, 일상적 용어로 두루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재화적 의미가 강해 역사와 정신 모두를 아우르기 어렵다는 지적 속에 '유산(heritage)'이라는 명칭이 새 법의 제정과 함께 그것을 대체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재든 문화유산이든 법의 정의는 같다.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유형과 무형의 유산." 이 네 가지 기준을 통해 문화유산(문화재)은 그저 오래된 물건인 '골동품'과 구분된다.

문제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라는 것이 때론 모호하고 사람마다 혹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상이하다는데 있다. 법은 이 문제를 문화재위원이라는 10명 내외의 현자들이 모인 원탁회의에 맡기고 있다. 역사, 건축, 미술, 민속 등 각 분야의 석학과 전문가들이 어떤 것의 역사성과 예술성, 학술적, 경관적 가치를 판단하여, 그것이 제도적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문화재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는 일정한 인정투쟁이 개입되고, 그 결과가 모두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법은 문화유산이라 명명하지만, 어떤 이들은 '적산(敵産)'이라고 부르며 철거를 주장하는 식민지시대 이 땅에 지어졌던 무수한 건축물들이 그 예이다.

법으로 정하는 대상이 이렇게 명료하지 않아도 되나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그런 이유로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무엇이 문화유산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그 행위가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도달한 지성과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공동체의 축적된 지식과 시대적 지향, 미학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하거나 한 단계를 갱신하는 일인 것이다.

지금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대전역 철도보급창고'의 이전은 다시금 '문화유산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하는 오래된, 하지만 전혀 새로운 류의 질문을 제기한다. 현장보존은 이 분야의 불문율과 같다. 하지만 대전시는 그것을 깨고 이전보존을 선택했다. 오랜 세월 철도보급창고는 주차장으로 변한 대전역 동광장에 섬처럼 남겨져 있었다. 장소성은 보존하고 있었지만, 경관은 깨졌고 그것이 놓여져 있던 공간적 맥락 또한 지워졌다.

긴 고민과 논의 끝에 9월 말, 철도보급창고는 현재의 자리에서 약 600m를 이동, 신안2역사공원으로 옮겨진다. 부작용이 큰 해체복원 대신 6대의 모듈트레일러를 연결, 그 위에 실어 그대로 옮기는 이축 방식을 택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의 진보가 문화유산의 물리적 훼손을 최소화해 지금보다 개선된 경관과 보존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대전시는 장소성의 고수 대신 그것을 선택했다.

대전시의 이러한 결정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책을 통해 작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시대에 예술작품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평이 바뀌었는데, 이전에 물어왔던 동일한 질문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대전시가 찾은 답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관점에서 회자되고 또 연구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로 우리는 이 대담한 프로젝트가 지금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이 하나의 질문을 환기시켜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우리에게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

/노기수 대전시 문화관광국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청주서 국내 최초 고고학 대박… 운천동서 고려 ‘청석탑’ 온전하게 나왔다
  2. 담양군,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최우수상·우수상 석권
  3. 전쟁 끝났는데 홀짝제 풀리나…차량 2부제 완화 여부 관심
  4. 성남 원도심, 대규모 정비사업 본격화…도시 균형발전 시험대 오른다
  5. 충남대 통합 찬반투표 앞두고 쟁점 재점화…17일 대토론회
  1. [현장의 사람들] 불길이 남긴 흔적 쫓아 원인 밝힌다…대전동부소방서 곽맹걸·이태규·김재능 화재조사관
  2. "우주에서 본 지구, 협력이 답이었다" 우주인 이소연 박사 대전ISS서 강조
  3. 가축방역 최전선 '공중방역수의사' 처우 개선 '첫 단추' 끼웠다
  4. 충청권 의료현안 정조준 복지부 국립대병원 육성안…상경진료·치료가능 사망률 효능 주목
  5. 오석진 인수위, 17일 첫 업무보고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반도체 패키징 벨트 `호남 투자론`에 제동 우려

충청권 반도체 패키징 벨트 '호남 투자론'에 제동 우려

<속보>=충청권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반도체 후공정 투자 구도에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역 사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본보 6월 11일자 1면 보도> 더구나 국가균형발전 기조 속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호남권 반도체 투자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충청 정치권에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투톱의 충청권 기존 투자 계획 이행은 물론 신규 투자 등을 위해선 지역 정치권의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7일 지역 정·관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충남 천안·온양을 첨단 패키..

대전의 아들 황인범 월드컵서 아시아 유일 베스트일레븐 선정
대전의 아들 황인범 월드컵서 아시아 유일 베스트일레븐 선정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눈부신 경기력을 뽐낸 '대전의 아들' 황인범이 월드컵 선수들 중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축구 콘텐츠 매체인 '매드 풋볼(MAD FOOTBALL)'은 월드컵 조별리그 A~H조 1차전 중간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했다. 황인범은 4-3-3 포메이션으로 선정된 베스트일레븐에서 미드필더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아시아권에선 유일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남은 미드필더 두 자리는 자말 무시알라(독일), 페드리(스페인) 등이다. 황인범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청년이 미래-2편]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대전시가 잇는 청년들의 인연
[청년이 미래-2편]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대전시가 잇는 청년들의 인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서 만날 기회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도 일상 속에서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비대면 문화와 개인화된 생활방식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접점이 감소한 데다, 학업과 취업 준비, 바쁜 직장 생활 등으로 인해 관계를 형성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한, 온라인 중심의 만남이 늘면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만남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데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갈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대전시가 마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