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딸아이가 아빠에게 신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시험 100점 맞았다?"
아빠는 기뻐하면서도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반에 100점이 몇 명이야?"
그러니 딸아이는 "나 혼자야!"
그제야 아빠는 "아이고 우리 딸 잘했다. 정말 잘했어!"라고 기쁨의 칭찬을 퍼부었다. 아빠는 아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칭찬보다 반에서 몇 등인지가 더 중요한 듯하였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비교문화'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비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아니 어쩜 태아에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태어난 후 영유아 검진을 받는데, 키, 몸무게, 머리둘레 등을 검사받는다. 보통 아이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 키는 상위 1%이고, 머리둘레도 또래 아이보다 엄청 작다고 해요! 비율이 좋은 거죠!"라고 다른 아이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사실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로 알려주는 것인데 말이다.
비교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둘 이상이 존재해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남과 비교해서 더 우월하면 사회적으로 보상이 따른다. 보상의 형태는 경제적이든, 사회적 가치이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보상의 욕구는 사회적 경쟁을 촉발하게 되며, 끊임없는 비교의 시작점이 된다. 부모에 의해, 사회에 의해 강요되는 경쟁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비교와 경쟁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흔히 경쟁이라고 하면 올림픽 선수들이 새로운 신기록을 경신하듯이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드는 순기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을 만들어 준 어제의 성공 공식에 안주하여 상대방에 대한 비방만을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잘못된 경쟁은 사회적 통합을 어렵게 한다. 경쟁 상대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원천 기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콜라 회사의 경쟁 상대는 누구일까? 다른 콜라 회사, 타 음료 회사도 아니다. 인간의 몸에 70% 이상을 차지하는 '수분'이 콜라 회사의 경쟁 상대이어야 한다. 또한 OTT회사의 경쟁 상대는 누구일까? 역시 타 회사가 아닌 인간의 '수면 시간'이 경쟁 상대이어야 한다. 타 회사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경쟁은 고객의 관심을 잠시 끌 수도 있지만, 지속적 비교우위를 확보해 주지는 못한다. 오직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주요 경쟁요인으로 설정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한 길로 간다면 순위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독보적인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자의 방향으로 간다면 순위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즉 넘버원(Number one)이 아닌 온리원(Only one)되어야만 진정한 경쟁이 된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펼치는 가수들이 살아남고 있다. 넘버원은 언제든지 경쟁을 통해 순위가 바뀔 수 있지만, 온리원은 대체 불가하다.
작은 그릇에 담긴 내 지식과 경험은 가득 차 보이지만, 큰 그릇에 담으면 부족해진다. 작은 그릇으로 큰 그릇과 경쟁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수 있다. 내 그릇이 작을 땐 상대방과 경쟁하며 에너지를 쏟지만, 내 그릇이 크다면 부족한 만큼을 채우기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경쟁의 에너지를 오직 자신을 개발하는 에너지로 활용한다면, 세상은 대체 불가능한 온리원이 존재하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경쟁 상대는 타 당이 아니다. 국민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경쟁 상대이어야 하며, 큰 그릇에 자신을 담는 온리원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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