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소제산(蘇堤山)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소제산(蘇堤山)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4-04-24 17:00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022901002132100086811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1653년 송시열은 당시 정적 김자점 일파에 의해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거듭된 효종의 부름에도 나가지 않고 소제산 아래 소제호 앞에 은거하며 '소제에 터를 잡고 고함'이라는 짧은 글로 노정객의 심경을 토로하였다. 소제산은 소제호를 앞에 둔 낮으막한 언덕에 노송이 즐비하게 늘어선 아름다운 산이었다. 이곳에 그는 별당을 세우고 '기국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국정에서는 그를 찾아오는 손님을 맞거나 제자들을 가르쳤다. 소제호를 마주하는 곳에 연원도찰방을 지낸 박계립의 별당인 삼매당도 있었다.우암이 지은 '삼매당 팔경'이라는 시를 보면 소제산 아래 소제호 주변은 중국 항저우의 유명한 호수인 서호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으로 풍경이 빼어난 곳이었다.

경부선 개통 후 대전 거주 일본인들은 1907년 4월 초에 소제산에 '태신궁'과 대전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소제공원'을 세웠다. 태신궁은 10년 뒤 공인 신사인 '대전신사'로 바뀌었다. 신사는 일본인들이 특정 신위를 모시고 복을 비는 민간신앙의 공간이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후천황제가 확립되고 신도가 국가종교로 발전해 일본 국가 제례의 상징 공간이 되었다. 대전 신사의 위치가 철도와 단절된 곳이라 통행이 어렵고, 경내가 사유지로 불편하여 일본 거류민회의 현안이 되었다. 당시 대전 양조업계의 큰손 '쓰지 긴노스케'가 지금의 대전 성모여고 자리송림 만평을 기부해 1929년 이전해 갔다. 대전 신사가 대흥동으로 이전 하기 전까지 소제산은 대전의 전통 마을이 자리한 상징적 공간이자 랜드마크였다.



일제강점기 공원은 근대화의 산물이자 식민화의 현장이었다. 대한제국 군인의 추모 공간이던장충단공원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들어서며 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조선 왕실의 궁궐은 식물원, 동물원 같은 테마파크로 변했고 각 지역에 신사(神社)도 공원이 되었다. 1910년부터 일본의 한국 식민화 과정에서 '근대 문명화 전략'을 추진했는데, 식민지민들이 자국의 문화를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해 식민 지배를 쉽게하는 것이었다. 식민주의는 단순히 복종하게 만드는 능력보다 식민지민이 전근대적인 자기 문화를 제국주의 근대문화와 대비시켜 자신들의 문화가 얼마나 후진적 인지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식민주의 전략을 적극 활용하여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였다. 그리하여 한인들은 식민지민으로 전락하여 독립에 대한 의지가 약화 됐다. 이 문명화 전략의 하나로 추진한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공원'의 조성이었다. 식민 시기 한국인들은 근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누리기 위해 오락 공간이자 놀이공간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대문화를 향유하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갔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대전역세권 일원 재정비촉진사업으로 대전 역세권 내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소제동 중앙공원 조성' 사업이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소제산 일대가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대전시는 소제동 일원 3만 4220㎡ 부지에 문화 공원을 신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 내 공원 조성을 통해 원도심에 부족한 힐링 공간 제공 및 도시 균형발전 모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일제의 패전으로 한국이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은 식민지배의 종식이 정치체제나 식민권력에 국한되는 경향이었다. 일제의 근대 문명화의 이름으로추진된 문화적 침투는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다. 그 잔재의 청산 과정 및 정체성의 회복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제중앙공원' 추진 과정에서도 왜곡된 '근대공간'의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모아져야 한다. 지금 소제산 일대에조성되는 사업은 대전의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해체된 전통 마을과 공간의 역사를 제대로 회복하고 청산하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수영구,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시 50만원 지원
  2. 경북도, 올 한해 도로. 철도 일 잘했다
  3. 천안신방도서관, 2026년에도 '한뼘미술관' 운영
  4.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2025년 평생학습 사업 평가 협의회 개최
  5. 세종충남대병원, 공공보건의료계획 시행 '우수'
  1. 종촌복지관의 특별한 나눔, '웃기는 경매' 눈길
  2. 2026년 어진동 '데이터센터' 운명은...비대위 '철회' 촉구
  3. [중도일보와 함께하는 2026 정시가이드] '건양대' K-국방부터 AI까지…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
  4. 유철, 강민구, 서정규 과장... 대전시 국장 승진
  5.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5년 12월24일 수요일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