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영화 한 편 보실까요?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영화 한 편 보실까요?

유동하 충남경찰청 112상황실장

  • 승인 2024-08-21 17:37
  • 신문게재 2024-08-22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유동하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112상황실장
무더위에 지친 요즘, 귀신 나오는 납량영화 한 편 보면 제격일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무작정 집 앞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적당한 납량영화가 없어서 결국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배우 조정석이 주연한 '파일럿'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민간 항공사의 기장인 주인공이 회식 자리에서 '말 한마디' 잘못해 해직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여성으로 위장해 재취업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코믹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솔직히 영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정말 그 정도의 발언이 해직 사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저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주인공은 갓 입사한 스튜어디스를 위해 건배사에서 '아름답다'고 표현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영화 중반에 왜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더위를 날릴 겸, 특히 50대 이상 직장 남성이라면 꼭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성인지 감수성 교육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도 회식 중 실수로 한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말,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문제를 바로 인식하고 사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발언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면 정말 큰일이죠. 특히, 50대 남성들은 직장에서 관리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문제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예전의 음주가무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따라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제가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불편한 이야기도 하나 더 꺼내볼까요? 사실, 이 얘기는 언젠가 꼭 칼럼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입니다.

경찰관들은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두 가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나는 교통사고 관련,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소·고발 관련 문의입니다. 대개는 처리 절차를 몰라서가 아니라, 담당 경찰관에게 부탁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좀 친절하게 해줘'라든가, '신속하게 처리해달라'는 요청이죠.

이런 전화를 받으면 참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사건 문의 금지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핀잔을 들으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부탁을 들어줬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왜 이번엔 안되냐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경찰은 2011년 사건 문의 일원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모든 사건 문의는 청문 기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경찰관들은 청문에 문의하는 것을 꺼려했고, 여전히 개인적인 인연을 이용해 담당자에게 문의하는 관행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부터 사건 문의 금지 제도가 도입돼, 모든 사건 문의가 금지됐습니다. '친절하게 해달라', '신속하게 처리해달라'는 요구도 이제는 안 됩니다. 이 제도는, 첫째로 직원간 사건 문의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친분이 있는 민원인이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문의하거나 부탁할 경우, 해당 관서나 부서에 직접 문의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를 어겨도 처벌이 따릅니다. 공무상 필요가 아닌 사건 문의를 받은 담당자는 한번의 청탁이라도 청탁신문고에 신고해야 합니다. 심지어 퇴직 경찰관에게 받은 문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어길 경우, 부패 원스트라이크 아웃 대상이 돼 수사 및 단속 부서에서 보임이 제한되고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제는 담당경찰관이 친절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수사구조개혁 이후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다행히도 우리 청은 장기 사건 보유율이 낮아 수위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 한마디 실수로 인생이 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등골이 오싹하지 않나요? 저에게는 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닌 한 편의 납량 영화였습니다. 오싹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유동하 충남경찰청 112상황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수영구,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시 50만원 지원
  2. 경북도, 올 한해 도로. 철도 일 잘했다
  3. 천안신방도서관, 2026년에도 '한뼘미술관' 운영
  4.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2025년 평생학습 사업 평가 협의회 개최
  5. 세종충남대병원, 공공보건의료계획 시행 '우수'
  1. 2026년 어진동 '데이터센터' 운명은...비대위 '철회' 촉구
  2. 종촌복지관의 특별한 나눔, '웃기는 경매' 눈길
  3. 유철, 강민구, 서정규 과장... 대전시 국장 승진
  4. [중도일보와 함께하는 2026 정시가이드] '건양대' K-국방부터 AI까지…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
  5.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