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글월 文, 거문고 琴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글월 文, 거문고 琴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4-09-18 17:11
  • 신문게재 2024-09-19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072401001893500075071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지난 주말에는 조상이 묻힌 묘소를 찾았다. 일 년에 두 번 간다. 4월 한식을 전후로 한 번 가고 추석을 앞두고 한 번 간다. 아들 녀석은 처음 잡은 직장이 토요일 근무를 하는 탓에 데려가지 못했다. 동생과 조카, 이렇게 셋이 묘소를 찾았다. 예초기를 등에 메고 잡목을 베어가며 길을 뚫고 올라갔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힘들었다. 최고 기온이 33도쯤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하지만 싱글 모터 엔진에서 뿜는 열기와 습한 공기가 더해져 불가마에 들어온 듯했다. 식염 포도당을 먹어가며 일을 했다. 연신 얼음물을 들이켰다. 먹은 물이 땀으로 그대로 흘러나와 옷을 적셨다. 옷에서 땀이 솟구쳤다.

필자는 조부모를 뵙지 못했다. 환갑을 넘기시자마자 지병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그다음 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7남매의 장남이자 딸 넷을 둔 가장이 되셨다. 아버지보다 두 살 많은 큰고모는 일찍 부잣집에 시집가셨고 작은고모 둘은 농사짓는 고모부를 만났다. 하지만 스물에 장가든 아버지 밑에는 아직 두 명의 여동생과 남동생 하나가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는 초등교사 월급으로 고모들과 작은아버지를 여웠다.

할아버지는 말년에 딸만 넷을 난 큰 며느리를 나무라지 못하고 술 드시고 마을 어귀에서 우셨다고 했다. 장손을 못 보고 돌아가실 할아버지께 죄스러웠던 아버지는 넷째 딸 이름을 특별하게 지었다. 마침, 성명학을 독학하고 동네 아기 이름 짓는 일을 도맡아 했던 아버지는 숙(淑)자 돌림의 누님들 아래 넷째 딸 이름을 문금(글월 文, 거문고 琴)이라고 지었다. 뒤로 문금 누나는 남동생 다섯을 봤다. 필자와 동생, 작은집 세 명의 사촌 남동생까지. 그래서 그런지 십 리 밖 아이 이름까지 죄다 아버지가 지으셨다. 게다가 문금 누나 이후 우리 집안에는 딸이 귀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아버지는 퇴직과 동시에 위암을 진단받았다. 당시 문금누나와 필자와 남동생은 연거푸 결혼해서 신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덜컥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결혼하고 두서너 해는 신혼부부가 오롯이 살아간다. 우리 형제들도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 병환 소식으로 삼남매에게 숙제가 내려왔다. 장손을 못 보신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도 아직 장손을 보지 못해 노심초사하셨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장손을 보고 싶다고 직접 말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장손과 두 손녀를 품에 안아보시고 그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2002년 월드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효자셨다. 자기 부모 묘소를 지극 정성으로 가꾸셨다. 집에서 족히 십 리는 떨어져 있는 묘소에 자전거를 타고 다시셨다. 자동차를 이용해도 가파른 길이었다. 묘소는 옹골차게 뿌리 내린 잔디가 언제나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언제나 햇빛이 들었다. 자칫 웃자란 나무가 있으면 아버지의 낫과 톱을 피하지 못했다. 위 절제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는 묘소를 크게 확장했다. 부모 묘 옆으로 허묘 두 기와 자신이 묻힐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 토요일 찾았던 아버지가 가꿨던 봉분에는 잔디보다 잡초가 더 많았다. 묘소 앞 키 큰 잡목과 낙엽송이 그늘을 만들고 해를 가렸다. 내년 한식에는 이놈들을 베어내자고 동생과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지난해도 다짐했던 터였다. 사실 장손인 필자보다 동생이 더 열심이다. 그래서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구십을 넘기신 어머니는 추석 아침 불현듯 묘소 이야기를 꺼내셨다. 자신이 죽은 다음 조상의 묘와 남편의 묘를 파묘하고 화장해서 작은 봉안 묘를 만들라고 당부하셨다. 늙은 어머니는 효자 남편이 만들어 놓은 넓은 묘역이 아들들 등골 휘게 할까 봐 내내 걱정하셨다. 공교롭게도 오늘 19일은 내 할아버지가 그렇게 원했던 장손이 태어난 날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5장-별봉, 세상의 중심을 꿈꾸다
  2.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3. 안전공업 참사 73일 만에 또… 충청권 산업현장 안전 경고음
  4.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5. [기고] 법화경 리더십과 한국 핵무장의 시대정신
  1. 김기웅 서천군수 후보 배우자, 검찰 고발
  2. 초록우산 대전세종지역본부, 이수진요가로부터 후원금 전달 받아
  3. 박수현 "집권여당 핫라인 통해 현안 해결" vs 김태흠 "도민, 민주당 독주 허락하지 않을 것"
  4. 중국대학생 대상 한국어말하기대회 성황리에 개최
  5. 대전YWCA, 여성친화도시 조성 위한 시민참여단 2차 역량강화교육

헤드라인 뉴스


6·3지선에 달린 충청 백년대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정한다

6·3지선에 달린 충청 백년대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정한다

'552명.'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선출하는 충청의 지역 일꾼 숫자다. 지방행정 전반을 책임지는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이를 견제·감시하는 광역·기초의원, 교육행정을 총괄하는 교육감까지, 새로운 '충청시대'를 열어갈 우리 동네의 참된 일꾼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뽑는다. 그동안 지방자치는 발전해 왔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거대한 중앙 정부의 틀 속에서 충청권 4개 시·도 광역정부와 지역별 기초지자체의 자율성과 권한은 제자리에 머물렀고, 지역민들의 실질적인 참여 또한 제한적이었다. 지방자치 산실..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충남대와 공주대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충남대 내부에서 중복학과 유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교수회는 통합 논의 과정에서 제시됐던 '중복학과 현행 유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학본부는 학과 자율에 따라 통합 또는 특성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충남대 교수회는 1일 입장문을 내고 "대학 발전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대학 통합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통합 추진 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 설명한 내용을 대학본부가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회는 충남대와 공주대가..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화재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과거 반복됐던 한화 방산사업장 폭발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대전 유성구 외삼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해당 사업장은 과거에도 로켓 추진체 관련 공정에서 대형 인명피해가 난 곳이다. 한화 대전사업장에서는 2018년 5월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51동 충전공실에서 로켓 추진 용기에 고체연료를 충전하던 중..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꼭 투표하세요’ ‘꼭 투표하세요’

  •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폭발사고…5명 사망·2명 부상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폭발사고…5명 사망·2명 부상

  • 지방선거 전 마지막 주말…대전시장 후보들 ‘뜨거운 호소’ 지방선거 전 마지막 주말…대전시장 후보들 ‘뜨거운 호소’

  •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이상무’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이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