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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내린 비로 인해 수확기를 지난 벼들을 수확을 하지 못한채 논에서 쓰러져 있는 모습(사진=독자 제공) |
서산시 인지면 A씨는 "30여 년째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젠 농사 달력이 소용이 없다. 언제 심고, 언제 거둬야 할지 모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10월 중순이 되어도 마늘 밭이 진흙탕에 잠겨 있어 파종이 계속 지연되고 있으며, 일부 논에서는 벼가 물을 머금은 채 싹이 트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충남 서해안의 9~10월 강수일수는 평년 대비 1.8배 이상 증가했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사라지고, 농작물 생육 주기가 예측 불가능해졌다. 기상청은 최근 5년간 가을철 강수량이 꾸준히 증가하며, '가을 장마'가 기후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남서풍이 강화되면서 10월까지 장마성 비가 이어진다. 한국 농업의 기후 패턴은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서산·태안 지역은 전국 마늘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주산지지만, 파종 지연으로 내년 작황이 불투명하다. 벼 농사 역시 늦장 수확과 침수 피해로 품질 저하와 도정 손실률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서산시 부석면 B씨는 "비가 자주 내려 콤바인을 넣을 수 없었고, 벼가 쓰러지거나 낟알 색이 변해 팔 쌀조차 부족할 판"이라고 말했다.
마늘과 벼뿐 아니라 배추, 무우 등 주요 작물도 이상기온과 병해충 증가, 생육 불균형으로 저장성과 품질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후에 맞춰 농사 짓기'가 아니라 '기후를 이기는 농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지역별 강우량·기온·토양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 작부체계 구축이 필요하며, 단순 기계화 지원보다 기후 적응형 농정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스마트농업 기술을 활용한 대응도 시작됐다. 서산 지역 일부 농가가 온실 자동관수·환기 시스템으로 습해를 최소화하고, 또한 일부 마늘농가는 배수시설을 보강해 '비 대비형 밭 구조'를 시범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재해보험 보상 한계, 피해조사 지연, 구조적 지원 부족 등 현실적 제약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한 관계자는 "가을장마 피해가 갈수록 심해 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기후변화 대응형 영농지원을 확대하겠다"며 "농업은 자연과 맞닿은 산업으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지역별 데이터 기반 대응 체계, 청년농 육성, 탄소중립형 농법 확산이 농업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닌 농업의 상수가 되고 있으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농업 환경 속에서, 농민과 정책이 함께 기후 적응력을 키우는 것이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전망이다.
서산=임붕순 기자 ibs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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