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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
이즐링턴의 애슈턴 카날 옆에 있는 칩스(chips)라 이름 붙여진 도시재생 공동주택은 이름부터 특이하지만, 치열한 세상의 공동주택과는 거리를 두고 재미있게 일상이 즐거워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세 줄의 수평을 이루는 띠로 구성된 9층짜리 이 건축은 감자칩처럼 3층으로 된 세 가닥의 긴 덩어리가 각기 엇갈리며 서로 끼워 조립된 자유로운 건축이다. 공동주택의 무료함이나 개발의 존재감 투기의 광풍이 여기선 조용히 사라지고 그저 즐기고 싶은 거주자의 선택으로 지내면 되는 평온을 간직하고 있다. 좀 익살스럽게 보이는 것도 영국적인 유머와 '윌 알솝'이란 건축가의 재능과 '어번 스플래쉬'라는 개발사의 전략이 함께 했겠지만, 그렇다고 재미로만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뛰어남이 이 '칩스'를 통해 드러난다. 서민 형의 주거에서 공간적 풍족함이 크지는 않을 것이나, 물길이 있어 풍요롭고 자유로운 외연을 지닌 건축에서 일상의 즐거움과 건축의 재치가 물길과 함께 더 크게 다가온다.
작은 물길들의 이어짐은 이미 뛰어난 산업 기술로 근대의 문을 연 영국에 서는 보편적이나 이웃인 프랑스의 기술도 못지않게 '물 위의 물길'을 고안하여 자연의 흐름을 제지하지 못하는 물의 다리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베지에 오브' 강으로 오브강을 넘어 '카날 드 로브' 수로로 이어지는 300킬로 거리의 '미디운하'는 17세기 초에 조성되어 배를 타고 강을 가로질러 건너게 된다. 놀랍지만 이미 제정 로마 전성기 '팍스로마나' 시대에 수로를 만들어 물길은 어디라도 넘나드는 재능을 보였고, 미디운하의 물길은 길 위로 자동차가 흐르듯 배를 실은 물이 강을 건너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급하게 이루어진 도시는 어딘지 마음의 풍요보다는 그 화려함이 부담스럽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모습을 띤다. 모두가 현실의 꿈으로 한때는 '두바이피케이션-두바이도시처럼 이룸'의 '놀라운 성취'를 갈망하기도 했지만, 이 신도시는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사막의 신기루를 떠 올리게도 한다.
일찍 전원주택을 꿈꾸어 왔던 영국은 '가든시티 무브먼트-전원도시 운동'으로 도시에 숭숭하게 열린 숨 터를 조성해 왔고 신도시의 계획에서도 개발자의 의지보다는 거주자의 꿈을 위해 낮고 비움이 많은 공원 도시를 조성하려 애써왔다. 대표적으로 수로를 중심으로 낮은 주거들이 물을 에워싸고 있는 영국 버밍엄의 '밀턴 케인스' 신도시는 집 앞에서 송어 낚싯대를 든 거주자가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집 앞의 물가에 앉아 낚시하는 장면에서 꿈이 현실이 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현실적인 장면은 바로 집 앞의 낚시 장면보다, 일과 삶이 오버 랩 되는 이즐링턴의 물길이 만든 도심 속 마리나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작은 꿈이 일상이 되는 미장센이며, 극적인 장면이 커피잔을 든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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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