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1987에 대한 삐딱한 단상

  • 사회/교육

[프리즘] 1987에 대한 삐딱한 단상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승인 2018-02-13 10:35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송지연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1987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 아직도 자신이 기득권에 저항하는 청년인 줄 아는 그들은 한껏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지만 - 아이들끼리 온 아이들은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소거된 반응을 보였다. 난 고문당하고 다 불어버릴 것 같아, 낄낄.

나는 직선제를 실시한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맥락을 어떻게 그릴지 기대하며 봤다. 이건 좀 못된 악취미다. 그걸 그리는 순간, 1987의 입장이 영 애매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게 기다렸다. 목숨 걸고 이루어낸 직선제의 성취 결과가 김대중과 김영삼이 아니라 전두환 후배 노태우였다는 점을 이 영화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적의 적은 동지이므로 민주화 운동은 북한과의 연관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991년 전후 소련 해체의 무드 속에서 분신정국은 직선제 이후에도 대단한 "그날이 오지"는 않았다는 재미없는 현실 - 노태우의 당선을 끝끝내 부정하고 싶어 벌인 죽음의 굿판이 맞다. 정신승리를 위한 광기의 현장에서 죽은 대학생들의 이름을 종교지도자란 사람들이 목청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분신자살을 종용했다. 초반의 죽음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죽음이 몇 번 통하고 정치적 효용이 생긴 후부터 운동은 순수성을 잃었다.

엔딩 숏을 보는 순간, 탄복했다. 그렇구나. 광장 이후나 광장 바깥은 없구나. 내가 기다린 이야기는 당연히 안 나온다. 멍청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애초 거기까지 가면 웰메이드를 해치게 된다. 1987의 엔딩은 이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엔딩이다.

평론가들은 1987년의 광장이 2017년의 광장에 재현되지 않았느냐며 그 유사성에 대해 기쁘게 거론하지만, 그 장면이 30년을 건너뛰어 현실에 그대로 재현된 것이 꼭 좋은 일일까. 영화의 엔딩에 대한 평론가들의 똑같은 해석은 현재의 그들이 여전히 1987년에 살고 있거나, 그 상태에 머물러 있고 싶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욕망이 저도 모르게 드러나버린 엔딩인 것이다.

1987과 2017 사이 30년은 사라진 시간인가? 영화 제목 1987은 바로 그 엔딩에 와서야 등장하고, 우리 현실은 그냥 거기에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타 말잔등의 움직임을 느끼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등장하는 표현) 환희와 승리감에 도취된 순간에 - 영원히 멈추어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광장 이후나 광장 바깥에 대한 고민은 필요없는 것이다. 광장의 감동이 30년 후에 부활했으니 완벽한 멈춤의 인식이다. 적어도 진보가 무슨 뜻인지 안다면, 멈춤과 박제 상태가 결코 역사의 진보는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화세대를 존경하지만 자기 몫의 고통이니 책임값 없이 나이브하게 그 시절을 미화하려는 선배들을 치받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당신들도 유신세대 치받으면서 역사의 주역이 되었잖아? 진보를 자처해온 586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처럼 따르는 것으로 현 2030 젊은세대가 진보할 수 있을까.

동지적 친우가 내게 해준 말을 옮겨 적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1987 광장의 끝이 노태우 대통령 선출이었다는 사실을 블랙코미디 형식의 영화로 만들 수 있을 때가 그들이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일 겁니다."

사족. 영화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영화는 암전된 극장 안에서 모두 똑같은 장면을 보아야만 하는 한시적 파시즘의 예술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는 자본의 예술이다. 팝콘과 콜라로 타는 목마름을 축이며 민주주의를 논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르포] 트램 공사에 시민 불편 가중…경적·호루라기 뒤엉키고 민원 잇따라
  2. 대전시 문화예술 기관장 인사 '설왕설래'
  3. [편집국에서] 이러다간 둔산광역시 되겄슈
  4. [논산다문화] 논산시, 탑정호의 밤, 빛과 음악으로 물들다
  5. 대전시 李정부 첨단산업 정책 잇단 배제 위기감 고조
  1. "횡단보도 하나 두고 탄방"… 둔산 14구역 '둔산동 편입' 움직임
  2. 괴산고추축제에 32만2천명 찾아···건고추 완판 12억 원 판매
  3.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4. 대전시의회, 민인홍 인사청문회… '직무능력·전문성' 검증
  5. 대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국비 또 험로…환아 느는데 정부 지원 '반토막'

헤드라인 뉴스


조상호 세종시장 "부처·기관 이전 시 종사자 특공 부활해야"

조상호 세종시장 "부처·기관 이전 시 종사자 특공 부활해야"

조상호 세종시장이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 등 부처·기관 이전과 대비해 이전 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의 부활을 예고했다. 세종시에선 과거 중앙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할 당시 아파트 분양 물량의 최대 70%까지 공무원과 기관 종사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제도를 운영했지만, 특혜 논란 끝에 2021년 폐지된 바 있다. 시는 제도 보완을 전제로 대규모 부처·기관 이전이 이뤄질 경우 특별공급 부활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이미 정부와 관계기관에 의견을 제안해 협의를 본격화하도록 대응하고 있다. 조상호 시장은 7일 세종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

7월 휴가 시즌에도 지갑 닫은 충청지역민... 대형마트 판매액 감소세 여전
7월 휴가 시즌에도 지갑 닫은 충청지역민... 대형마트 판매액 감소세 여전

어려운 경기 상황과 내수 부진으로 충청 지역민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고 있다. 가계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줄이는 게 먹거리인데, 휴가시즌이 시작된 7월에도 대형마트 소비액 마이너스 기조가 계속되면서 불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7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최근 대전·세종·충남지역 실물경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7월 지역 대형마트 판매액 지수(매장면적 3000㎡ 이상)는 일제히 마이너스로 마감됐다. 지역별로 보면, 대전의 대형마트 판매액 지수는 1년 전보다 7.2% 하락했다. 6월 -14.6%를 기록하며 마..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본격 추진... 남북축 연결 기대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본격 추진... 남북축 연결 기대

대전 유등천변을 따라 남북축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망인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민선9기 출범 후 재정여건을 고려해 보류됐었지만,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속도를 내게 됐다. 대전시는 7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허태정 시장과 박용갑 국회의원, 시구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기본설계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은 중구 사정동 사정교에서 대덕구 오정동 한밭대교까지 연장 7.61km 구간에 왕복 4차로, 폭 20m 규모의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