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73화. 인연 없었다면 이용익의 출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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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73화. 인연 없었다면 이용익의 출세도 없었다

부지런해서 손해 볼 일 없다

  • 승인 2018-10-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난 10월 9일 한글날에도 출근했다. 늘 그러하듯 새벽 첫 발차의 시내버스를 타고 나왔다. 그 버스의 발차시간은 오전 05시 38분. 따라서 시간에 맞추자면 04시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비록 도토리밥일망정 약간의 조찬(粗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이어 목욕을 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어쩌고 하면 시간은 번개처럼 금세 간다. 이 같이 부지런한 덕분에 딱히 건강엔 이상이 없다. 출근을 하니 전날 도착된 간행물이 있었다. 독립기념관에서 보낸 월간지였는데 여기에 흥미진진한 기사가 실렸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용익
이용익/출처=위키백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하나>에선 구한말에 그야말로 일약 출세한 인물이었던 이용익(李容翊)을 다루고 있었다. 그는 그 즈음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본디 아주 빠른 발걸음의 물장수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엔 부보상(負褓商)으로 전국을 다니기도 했는데 이후 민영익(閔泳翊)을 만나면서 친분을 쌓았다. 여기서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당시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조카였기에 권력까지 대단했다.



이후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어 단천부사(端川府使)로 특진하였다. 단천은 금광이 있던 곳으로 이용익이 부보상으로 행상을 하면서 보아둔 터였기에 금맥을 찾는데도 특별한 재주를 발휘했다.

단천에서 발견된 금은 왕실의 재정을 키우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이용익은 1887년 영흥(永興)부사, 함남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왕실재정과 관할하는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1888년 임지였던 북청지역에 민란(民亂)이 일어나자 탐관오리로 탄핵받고 나주군(羅州郡: 지금의 新安郡)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허나 곧 풀려나 강계(江界)부사로 등용되었고 1891년에는 함남병마절도사에 재차 임명되었다.

이용익이 정계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게 된 것은 1897년 황실의 재정을 총괄하는 내장원경(內藏院卿)에 발탁되면서였다. 이후 감리서북광무(監理西北鑛務) 겸 감사철도사(監司鐵道司)를 거쳐 원수부(元帥府) 회계국 전환국장,서북철도국 총재,중앙은행 총재 등의 요직을 겸임하였다.

1902년엔 탁지부(度支部) 대신(大臣)이 되어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황실의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 인삼을 황실 전매사업화 하였고 외국인의 광산채굴을 금지하고 광산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했다.

또한 일본 자본을 막고 대한제국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였다. 러일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용익은 고종을 설득하여 대한제국의 중립을 선언하였다. 위기를 느낀 일본은 러시아와 국교를 단절하고 서울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1904년엔 외무대신 이지용(李址容)을 내세워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체결하였는데 이때 이용익이 나서 반대하였다가 일본으로 강제 납치되었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이듬해 이용익은 일본에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경북관찰사에 등용되었는데, 친일파 일진회의 극심한 견제를 받았다. 그는 일본에 억류된 1년 동안 일본의 근대화된 문물을 접하고 교육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보성사(普成社) 인쇄소를 차리고 보성학원(普成學院: 지금의 고려대학교, 보성중·고등학교)을 설립하였다. 그 후 군부대신에 기용되었으나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였고 일제의 압력으로 사퇴하였다.

육군 부장(副將)이 되어 일제 세력의 축출을 위하여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세력과의 제휴를 꾀하라는 고종황제의 밀령을 받고 인천항으로 거쳐 중국으로 갔다. 프랑스로 가던 도중 풍랑으로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기항하였다가 현지 일본관헌에게 발각되었다.

그러나 책임추궁을 두려워한 조선 본국 정부에 의하여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였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구국활동을 펼쳤으나 여의치 않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갔으며 이때 친일세력이 파견한 자객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여 구국운동을 계속하다가 사망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이용익의 '일대기'는 [네이버 지식백과]를 상당 부분 참고했음을 밝힌다. 이 글만을 보자면 이용익은 꽤나 대단했던 구한말의 독립운동가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찬가지로 그 대상을 누가 보느냐에 따라 관점과 관찰까지 달라지게 마련이다.

신현배 역사칼럼니스트가 사외보 <독립기념관> 2018년 10월호에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하나, 그 옛날 걸음의 의미> 칼럼을 통해 이용익을 칭찬한 반면, 윤덕한 기자(소설가, 출판인)는 2005년 3월 28일자 오마이뉴스 <이용익은 과연 항일 독립투사인가>를 통해 그는 러시아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 "(전략) 1903년은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전이 절정에 달해 양국 사이에 전운이 짙게 감돌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러시아의 앞잡이로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과 이권 획득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 바로 친러파 이용익이었다.

당시 이용익은 황실의 재신을 관리하는 내장원경으로 고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던 조정의 최고 실세였다. 1903년 4월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와 결탁해 압록강 상류의 삼림 벌채권을 러시아에 넘겨준 인물도 다름 아닌 이용익이었다.

(전략) 1895년 3월 이른바 '3국간섭'을 주도해 일본의 요동반도 점유를 저지시킨 이후 러시아가 청국과 조선의 보호국을 자처하며 장기적으로 조선을 병합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바보가 아니면 누구나 눈치 채고 있었다.

이용익은 그때 이래 철저한 친러배일파로서 바로 러시아의 이와 같은 대조선 정책의 현지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전략)

그가 친러배일에 앞장선 것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도 아니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은인인 민비와 왕실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제에 반대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애국지사 대접을 하는 것은 역사를 너무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만고의 매국노로 지탄받는 이완용의 역할은 누가 했을까?" =

신현배 역사칼럼니스트와 윤덕한 기자가 이용익을 달리 보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다만 두 사람이 인정하는 이용익의 장점은 동일하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고 KTX를 타면 보통 2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과거, 그러니까 이용익이 젊었던 시절엔 그런 교통수단이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당시엔 괴나리봇짐을 지고 서울이든 평양이든 그곳에 가려면 오로지(!) 발걸음에 의지하여 걷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발군의 실력을 뽐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비각'이었다. 고려시대부터 황급한 일이 발생하면 편지나 문서를 손에 들려 달리게 하는 일을 맡겼는데 이 소임을 맡은 사람이 바로 '비각'이다.

하루에 보통 100리를 달렸다는데 그렇다면 일종의 축지법(縮地法)을 쓴 셈이지 싶다. 이용익은 민영익을 만나 출세하기 전에는 물장수를 했다. 한데 그때도 어찌나 발걸음이 빨랐던지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했다고 한다.

이를 눈여겨 본 민영익이 어느 날 명성황후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중전마마, 물장수 가운데 걸음이 무척 빠른 사람이 있는데 500리 길을 불과 11시간 만에 간다고 합니다." 이에 솔깃해진 명성황후가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500리라면 보통 5~6일이 걸리거늘!" 명성황후는 이 얘기를 고종에게 전했고 고종 또한 큰 관심을 보였다. 결국 이용익을 시험하게 되었는데 이용익은 전북 전주의 감영에서 전주 감사가 준 부채 1000개를 들고 오전 7시에 출발했다.

그리곤 당일 오후 6시에 한양에 도착했다. 따라서 이는 불과 11시간 만의 '쾌거'에 다름 아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감탄한 고종과 명성황후의 눈에까지 든 이용익은 그로부터 출세가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다음 역시 윤덕한 기자의 글을 인용했다.

= "그렇다면 함경북도 명천의 무식하고 미천한 보부상 출신 이용익이 이처럼 격에 맞지 않은 출세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순전히 그의 빠른 발걸음 덕분이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대궐을 빠져나와 충주의 장호원으로 피신한 민비(후에 명성황후로 추존됨)는 자신의 친정 조카이자 척족정권의 수령격이던 민영익과 은밀히 편지를 주고받으며 청국 군대를 불러들여 대원군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과 장호원 사이의 왕복 4백리 길을 이용익이 빠른 발걸음으로 하루 만에 오가며 그 편지 심부름을 도맡아 한 것이다. 그는 민비가 환궁한 이후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해 민비가 죽은 후에도 고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대신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

결론적으로 이용익은 빠른 발걸음으로 말미암아 크게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 걸음은 또한 부지런의 방증이었다. 아울러 민영익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이용익의 출세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구나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함부로 인연을 맺어선 오히려 곤란한 지경에 봉착할 수도 있다. 반면 좋은 인연은 이용익의 경우처럼 알찬 귀결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좋은 사람들과, 또한 많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다시 뵙는 사돈어르신과의 반가운 만남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더불어 나는 오늘도 부지런을 떤다. 부지런해서 손해 볼 일은 없기 때문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인물-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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