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오직 글쓰기 뿐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오직 글쓰기 뿐

  • 승인 2018-09-19 15:52
  • 수정 2018-09-21 09:05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달도 없고 별도 없는 깊은 밤, 고개를 넘으니 집채 만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번쩍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한다. "떡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자식 먹일 떡이지만 살아야 하기에 떡 하나를 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에 떨며 또하나의 고개를 넘자마자 그 놈의 야수같은 호랑이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서 있는 게 아닌가. 호랑이에게 또 떡을 줬다. 결국 떡이 다 떨어진 오누이 엄마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태어나 인생의 긴 여정을 가야 하는 우리는 호랑이를 피할 수 없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도무지 시지프스의 바윗덩어리를 피할 재간이 없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왜 글을 써야 하는가.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길을 나선 자의 행로는 쓸쓸하다. 어둠을 헤치며 나아갈지라도 피투성이 무릎은 감내해야 한다. 문득 칠흑같은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서쪽 하늘에서 북두칠성이 반짝인다. 홀로 반짝이는 별은 내 인생의 좌표가 될 것인가.



하나의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생명이다. 작품과 작가는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폐부 깊숙이 고통이 전해진다. 그의 글쓰기는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것. 프로이트는 누누이 말했다. "어릴 적 고통스런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어느 순간 불쑥 되돌아 온다"고. 12살 때 아버지가 광기에 사로잡혀 엄마를 죽이려 했다는 걸 믿을 수 있겠나. 한 손엔 낫을 들고 발버둥치는 엄마를 질질 끌며 부엌으로 가던 기억을 말이다. 숨이 멎을 듯한 끔찍한 경험은 작가에게 부끄러움이 되었다. 부모의 궁핍한 생활, 직업,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도 부끄러움이었다. 허나 드러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글로 써야 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스런 순간을 하나하나 끄집어 냈다. 아니 에르노는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책을 항상 쓰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 글쓰기는 작가의 구원과 맞닿는다.

작가는 무당과 다름없다. 신과 인간의 영매자를 자처한다. 거기엔 고통스런 제의가 따른다. 산고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으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어머니의 자살에 긍지를 느끼며 글로 써보리라 다짐하는 페터 한트케를 당신은 이해 가능한가. 오래 전 나의 데스크칼럼을 본 후배는 나무라는 듯한 말을 건넸다. "선배 그런 거 왜 썼어요." 무슨 말인지 안다. 내밀한 가족사는 감춰야 한다는 것을. 사회적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은 무시할 수 없는 법. 하지만 난 깨달았다. 상처와 열등의식은 곪은 종기 터트리듯 까발려져야 한다. 칼로 째서 고름을 짜내야 비로소 상처는 아문다. 아, 악마에게 혼을 팔아서라도 글쓰는 재능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박하고 솔직한 글에 더 감동받을 때가 있다. 지난해 부여 송정마을 주민들은 '내 인생의 그림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7,80대 어르신 23명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특별한 그림책이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던 어른들이 경로당에 모여 비지땀을 흘린 노고가 돋보인다. 이 분들은 오로지 자신에 집중해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썼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지 않아 더 울림을 준다. 시 한편을 소개한다. '안씨럽기는 안씨럽지/그래도 내가 키운 곡식을 찍어 먹을 때/가만 있을 수는 없지/알라, 그건 안되지/허망하고 미웁고 다 죽였으믄 좋겠지'.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에 대한 시다. 순수하고 해학적이어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자신에 대해서 실제의 자신보다 더 참되게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양어린이집 원아들, 환우를 위한 힐링음악회
  2. 세종시체육회 '1처 2부 5팀' 조직개편...2026년 혁신 예고
  3. 코레일, 북극항로 개척... 물류망 구축 나서
  4. 대전 신탄진농협,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진행
  5.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1. [교단만필] 잊지 못할 작은 천사들의 하모니
  2. 충남 김, 글로벌 경쟁력 높인다
  3. 세종시 체육인의 밤, 2026년 작지만 강한 도약 나선다
  4.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 “경력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수기업이 보여준 변화
  5. 대전웰니스병원, 환자가 직접 기획·참여한 '송년음악회' 연다

헤드라인 뉴스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공 시기가 2030년에도 빠듯한 일정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같은 해 6월까지도 쉽지 않아 사실상 '청와대→세종 집무실' 시대 전환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의 조속한 완공부터 '행정수도 완성' 공약을 했고, 이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도 채택한 바 있다. 이 같은 건립 현주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가진 2026년 행복청의 업무계획 보고회 과정에서 확인됐다. 강주엽 행복청장이 이날 내놓은 업무보고안..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