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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전문의 노승무 교수 |
미륵사지 석탑을 본 게 30년 전쯤이었나? 훼손되고 기울어진 탑의 한 면을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놓은 황량한 모습을 봤을 때의 실망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복원을 마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니 변화된 자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사리를 포함하여 만점 가까이 수습되었다는 유물도 볼 겸….
석탑의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호(金製舍利壺)'와 '사리 봉안기(奉安記)' 등을 보니, 백제 후예인 것이 자랑스럽다. 사리를 모신 장소가 워낙 예상 밖의 위치인 심주 속이기에, 이들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일제 강점기 발굴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을 거라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전시관에는 모형 심주를 만들어서 사리가 어떤 모습으로 봉안되어 있었는지 엿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아크릴로 된 계단이 심주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올라가서 보세요.'라고 제법 크게 써 놓았지만, 관람객 모두 선뜻 올라가지 않는다. 한자투성이 설명서만 보다가 한글을 보니 반갑다. 그러나 처음에는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읽었다. 해설사가 재차 권유한 후에야 하나둘씩 머뭇거리며 올라가는 것을 보면,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일까? 지금껏 어디에서나 경고성 문구인 '~지 마세요'만 봐 왔던 탓이 아닐까. 앞으로는 선입관 없이 쓰여 있는 글 그대로 읽는 긍정의 마음을 가져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들린 커피점은 영어로, 음식점은 이탈리아로 된 간판이 달려있다.
그래도 한글날 저녁 뉴스는 우리나라 글 자랑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방탄소년단이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를 외국인들이 따라 부르고, 심지어 뜻을 알고 싶어서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분다는 소식이 반갑다. 오천년 역사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계셨기에 우리가 지금껏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충남대 명예교수·전 충남대 의대 학장=오주영 기자 ojy8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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